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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와의 대화: 인간을 꽃피우는 노동(Bollate볼라테 교도소) 5



Giovanni(조반니): 안녕하세요. 저는 조반니입니다. 저는 28살이고 비포 협동조합 콜센터에서 일합니다. 교도소 안에 있는 이 콜센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아직도 우리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우리를 위해 투자해 준다는 면에서 무상성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도소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된 장소입니다. 비포 콜센터에서는 다른 시간과 관계 안에서 다른 방법으로 활발하게 생산활동을 하면서, 다른 가치를 얻게 됩니다. 노동 시간과 장소에서 새롭게 주변을 발견하고 건설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됩니다. 교수님께서는 노동, 시간과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브루니 교수: 좋은 질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조반니. 작년에 우리 모두는 코로나로 봉쇄 기간을 겪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사방 200 미터 거리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제한된 공간’의 상황에서 두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시간과의 새로운 관계가 태어났습니다. 작년 4월은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았죠. 제한된 공간에서의 시간은 훨씬 더 길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말했죠. 천정의 공간이 막히면서 시간의 벽이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의 이 제한된 공간에 대해 완벽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전에는 집 주변 사방 200 미터 안의 환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석 달 동안 매일 주변을 걸으면서 그 공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돌 하나하나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에 살고 있는데 마침내 사방 200 미터 주변의 나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나무들이 있었지만 자세히 본 적은 없었죠. 병에 걸렸을 때도 속도를 늦추게 되죠. 식물과 같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우리보다 훨씬 느리지요. 노인들도 그렇습니다. 매일 주변을 걸으면서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식물의 변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제야 식물의 생명 주기를 알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살아 있었는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공간이 제한되면서 특별한 관계가 태어나 그 곳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작지만 큰 공간이 된 것입니다.

훌륭한 작품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첫 부분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에드몽 단테스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수감된 감옥에서 파리아 신부를 만나 관계를 맺고 그 2 미터의 공간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하고 발견하는지 그 곳이 거대한 공간이 됩니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의 관계입니다.

제한된 공간은 좋은 문학과 예술로 넓힐 수 있습니다. 소설과 시, 이야기들을 통해 넓힐 수 있습니다. 소설이 뭘까요? 더해진 삶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앉은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봉쇄 수녀원의 수녀들은 평생 그 안에서 살 것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무기징역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 매우 탁월한 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한정된 곳에 갇히게 될 때 미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차원의 자유를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주일미사에 가서 성가를 부르는 것보다 진실되고 아름다운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와 시편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편과 성인들에 대해 제가 쓴 책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시편은 대부분 갇혔을 때 시련 중에 쓰였습니다. 박해 받고 갇히고 맞으며 병들었을 때 그 극한 상황에서 새로운 신앙,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간과 관계 측면에서 여러분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죠.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교도소에 있는 동안 부부간에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삶의 기본적인 관계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이런 식의 처벌은 여러 다른 부수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상처 받은 관계, 병든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관계도 맺을 수 있습니다. 신앙과 책 속의 인물들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책 속의 인물들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살아있는 친구들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파우스트, 죄와 벌 등의 문학은 인생을 바꾸는 명작입니다.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다가 2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쓴 유명한 시인 인빅터스에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계가 있고 문제도 있고 아주 작은 공간에 한정돼 있다 하더라도 바로 거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흑인 여인인 로자 파크스의 매우 아름답고 강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몽고메리에는 버스에 백인이 타면 앉아있던 흑인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인종차별법이 있었는데 로자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몽고메리의 모든 흑인이 1년 1일(366일) 동안 걸어서 출퇴근하는 시위를 벌였고 버스에서의 인종차별법이 폐지되었습니다. 그 때 함께 했던 마틴 루터 킹은 몇 년 후에 미국에서 인종차별법이 폐지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 흑인 여인은 가부장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미국 남부의 몽고메리 시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버스 좌석 하나인 그 작은 공간을 온전히 사용했던 것입니다. 의자 하나만큼의 작은 공간도 우리가 최대한으로 사용한다면 항상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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