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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페루치(Alberto Ferrucci) 이야기

1. 전체 행사 개요

ㅇ 행사명 : 경제 속 자매애(형제애) - 평화로 가는 길(Franterinta in Economia : una via per la pace) - AIPEC 10주년

ㅇ 일시 : 2023. 1. 28(토)

2. 첫 번째 패널 토크 : 자매애(형제애)를 이야기하다

ㅇ 토크 주제 : 새 경제를 이루는 방법 - 시민, 참여, 그리고 지속가능성(Come realizzare una nuova economia - civile, partecipata e sostenibile)



사회자 : 알베르토 페루치, 당신의 20대 시절이 궁금해요. 삶의 나침반이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알베르토 : 20대 때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대학을 다녔어요. 어느날 여덟 시간 근무를 끝내고 대학교 성당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친구가 저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주위 형제들을 사랑하면 돼. 그분은 우리처럼 사람이 되어 오셨지.”


저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인이었지만, 그날 그 친구의 말이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어요. 이후로 제 삶의 방향이 바뀌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제노바에 있는 한 제련소에서 부서 책임자로 일하게 됐어요. 어느날 새로 들어온 기계의 설명서 번역본이 제 손에 들어왔죠. 저에게는 보물 같은 것이었어요. 그것만 있으면 전 회사에서 충분히 돋보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친구의 말이 떠올랐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나만 볼 게 아니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덟 부를 복사해서 동료 여덟 명과 공유했어요. 대가를 바라고 한 건 아니에요. 사랑의 실천이었죠.



그 중의 한 명이 고맙다면서 저에게 열교환기 계산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화학자였고 그는 엔지니어였어요. 그 시절엔 야근도 많이 했죠. 그 시간에 그에게 배운 계산법으로 열교환기 하나하나를 점검해봤어요. 그 일이 제 업무는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일하는 곳에서 두루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거든요.


저는 그 계산을 통해 장비들 상당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잘못된 부분을 고치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어요. 기존에 100도 정도 올라가던 기계가 무려 180도까지 올라가는 것 아니겠어요? 에너지 효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한 청년일 뿐이었던 제가 한 일을 보고 저를 기술연구소로 보냈고 이렇게 저의 경력이 시작되었어요. 저의 작은 나눔으로 시작된 것이었죠. 저의 작은 선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렇게 저는 최고 경영자가 되어 전세계를 돌며 원유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특히 런던에 자주 갔는데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제가 해야죠.


기억하시다시피 오일쇼크가 있었을 때 다들 차를 버려두고 걸어다니야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어느 주일날 치타누오바 지에서 누군가가 “당신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데, 뭘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저는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하면서 “비싸진 석유를 사오려면 엄청나게 많은 화폐를 찍어내야 한다”고 답했어요.


이 돈은 석유왕들이 고급 요트를 사는데 쓰이게 될 것이고, 나머지는 은행이 보관할 것인데, 은행들은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상품을 사들일 테니까 물가가 오르게 되겠죠?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동의 석유부자들이 그 돈을 제3세계에 투자해서 그 나라들의 성장을 도우면 됩니다. 기업을 세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서방의 상품들도 이렇게 쓰여야 빈곤을 줄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제회의가 있을 때마다 산유국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도 아는 경제학자들과 의논해봤는데요, 그들은 제가 그 일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제가요? 제가 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 당장은 확신이 없었지만, 아무도 없다면 저라도 가야 한다고 느꼈어요.


저는 빈으로 가서 경제학자들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고 놀랍게도 그들은 저를 믿어 주었어요. 그들과 함께 제3세계의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했지만, 석유협회 회장이 갑작스럽게 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그 프로젝트는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2년 뒤 제가 다시 회의에 참석했을 때 사우디 아라비아인인 회장이 기조연설을 한 후에 질문이 있는지 물었어요. 제가 그리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왜 제3세계에 투자하지 않는지 질문했죠. 다른 나라에서 투자하려고 할 때 보증을 서는 방법도 있습니다. 원유가 있는 나라는 재정 기반이 보장된 나라예요. 그는 마땅한 프로젝트가 없어서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2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다른 프로젝트는 없고 무기를 사는 데 돈을 써달라는 요청은 받고 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거기서 이탈리아 북부의 기업인들을 만나 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협회는 이윤은 내지 않고 관계재에만 투자하기로 했어요. ‘발전을 위한 경제 프로젝트 서비스’라고 이름 지었고 1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어느덧 30년 전의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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