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프란치스코의 경제 - 피노키오
피노키오: 길과 선물에 대한 찬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피노키오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피노키오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며 충격적입니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교육학을 기반으로 “이탈리아인”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19세기 중반의 사회에서 소년들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취급되며 야생의 나무토막 같은 소년들을 좋은 시민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피노키오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 끈질기게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어 교육과 규칙으로 “구부러진 나무(코헬 1.15)”를 곧게 펴려고 하는 아버지들과 교사들의 세계에서 탈출합니다. 피노키오는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이며 거칠고, 무책임하며, 어리숙하고, 위험하며, 경솔하지만 엄청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가구(테이블)의 다리를 만드는 것처럼 사회의 부속품 같은 새로운 이탈리아인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콜로디(Collodi: 피노키오를 쓴 작가)는 그 시대의 교육 시스템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옛날 옛적에 나무토막 하나가 있었어요 - 피노키오의 모험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자유와 모험적인 생애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피노키오는 길을 걸으며 삶을 배우는 순례자입니다. 그 길에서 엄청난 체험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결국에는 바로 거기서 진짜 어른이 됩니다.
피노키오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지 않으려면 부모와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집을 떠나야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자유를 향한 놀랍고도 끈질긴 시도에 대한 찬가입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매우 사랑하는 어른들에게서도 떠나야 합니다. 피노키오 안에서는 소년과 꼭두각시 인형이 계속해서 다툽니다. 피노키오는 독자들에게 “어린이 여러분, 집으로 돌아가세요. 말 잘 듣고 착하게 사세요” 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말합니다. “어른들에게 반항하고 도망가서 되도록 오래 머무세요. 어른들은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자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는 사회성과 친화력을 중요시하지만) 피노키오는 외로운 소년이기도 합니다. 피노키오의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며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 (멋진) 동물들과 꼭두각시 인형들, 루치뇰로입니다. 그는 장난감의 나라에서도 혼자서 놀고 검은 새와 반딧불이, 족제비와 고양이, 귀뚜라미, 물고기와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어린이와 소년들은 곤충, 새, 나무들과 대화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막 태어난 아이는 더 깊고 다른 시선과 청각으로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는데 어른이 되면 그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피노키오는 동물들과 중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을 합니다. 비둘기를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했고, 바다에서는 참치가 구해주었으며,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마스티프 견종인 알리도로를 살려주고 알리도로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게 됩니다. 피노키오가 ‘초록 어부’의 프라이팬에 튀겨져서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바로 그 알리도로가 그를 끓는 기름으로부터 구해내면서 세상의 근본적인 황금률인 상호성을 가르쳐 주며 직접 실천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주 전체가 필요합니다. 피노키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에도 지독하게 혼자입니다. 교수형으로 죽을 뻔한 순간에도 “오, 아빠, 아빠가 여기 계셨더라면…” 이라고 외쳤지만 피노키오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어른들보다 얼마나 더 많이 외로운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콜로디의 시대에는 어린이와 어른으로만 구분되었고 그 중간은 없었습니다. 피노키오는 이제 아이가 아니었지만 아직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를 지나며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떠납니다. 성경과 앙드레 지드의 단편 “탕자, 돌아오다”에서처럼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계속해서 달려나가는 그를 우리는 응원합니다. “피노키오, 계속 자유롭게 달려가라”
피노키오는 가난한 소년이며 항상 굶주려서 먹을 것을 찾지만 거의 매번 찾지 못합니다. “너희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니?” 인형극장의 불 먹는 아저씨가 물으니 피노키오는 “아빠는 가난한 사람” 이라고 답합니다. 아빠인 제페토는 일을 했지만 가난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굶주렸습니다. 거기다 피노키오는 돈과 담을 쌓은 아이였기에 그것이 불행의 기원이었습니다. 피노키오의 모든 문제는 돈에서 시작됩니다. 교과서를 돈 몇 푼에 팔아 치우고 그 돈으로 불 먹는 아저씨의 인형극장에 입장합니다. 아저씨는 피노키오에게 금화 다섯 닢을 주고 그것 때문에 고양이와 여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피노키오에게 “우리는 이익을 내기 위해 일하지 않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일해.” 라고 말하고 피노키오는 “모든 고양이들이 너 같았으면 쥐들이 행복하게 살 텐데.” 라고 합니다. 무상성이라는 언어를 악용하여 청소년과 청년, 그리고 그 누구라도 속이는 것보다 더 악랄한 것은 없습니다. ‘고양이와 여우’ 들은 청년들의 모국어와 같은 선물이라는 언어로 그들을 속여서 죽이기 위해 죽음을 선물의 언어로 둔갑시킵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청년들은 속아 넘어갑니다.
피노키오는 일하지 않습니다. 일할 생각도 없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아빠 제페토에게 헤엄쳐 가려하지만 실패하고 모두가 항상 일만 하는 부지런한 일벌의 나라로 헤엄쳐 가게 됩니다. 장난감의 나라에는 학교가 없고 놀기만 하는데 이곳에서는 쉬는 시간도 없이 일만 합니다. 두 세계는 다르지만 둘다 잘못된 사회입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제 친구인 한 교사가 5학년 어린이에게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쉬고 싶어요.” 라고 답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숙제, 운동, 음악, 무용, 수영, 교리 등의 ‘일’에 파묻혀 있습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수적인데 그럴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장난감이나 고양이와 이야기 나누는 자유로운 시간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달하며, 다양한 것에 대한 욕구가 자라나게 됩니다(오늘날에는 스마트폰도 놓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풀을 뜯으며 방목되는 비생산적인 땅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수학과 시를 공부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달리면서, 긴 여름 동안 개울에서 멱을 감고, 나무 위에 오두막을 지으며 배웠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선생님도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나의 “장난감 나라”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쉬는 날이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는 아니겠지만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는 아이들의 마음이 죽습니다.
피노키오는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았지만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는데 일을 찾거나 구걸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구걸을 하는 것은 부끄러웠습니다” 제페토가 “구걸은 나이 많은 노인이나 병자만 하는 것이며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첫번째 노동자를 만나 그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은데 한 푼만 주실 수 있으세요?” 그 사람이 “이 석탄 수레를 집까지 끌고 가는 것을 도와주면 동전 네 푼을 주겠다” 고 답하지만 피노키오는 거부합니다. 피노키오는 ‘자선’ 이라는 선물을 청하지만 노동자는 “계약” 을 제안하고 피노키오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만난 벽돌공은 “석회 모르타르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 한 푼이 아니라 다섯 푼을 주겠다” 고 합니다. 다섯 푼으로 늘어나지만 피노키오는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구걸합니다. 피노키오는 노동보다는 구걸을 선택하고, 계약보다 부끄러움을 선택합니다.
결국 피노키오는 그 섬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여인이 지나가는데 피노키오가 물 한 컵을 청하고, 그 여인은 “마음껏 마시렴” 이라고 답하며 이 조건 없는 선물로 인해 대화가 시작됩니다. 후에 이 여인이 피노키오가 찾던 요정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물을 마시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그냥 줍니다(선물).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빵과 물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자녀이면서 모든 사람의 자녀이기도 합니다. 선물 받은 물을 마신 피노키오는 요정을 도와 일하게 됩니다. 물통을 집까지 날라주고 보상으로 음식과 맛있는 디저트까지 받습니다. 피노키오는 이 디저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일하게 됩니다. 요정은 동등한 교환을 넘어서는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먼저 선물을 경험하면서 상호성을 배웁니다. 좋은 계약은 무상성으로부터 나오며, 어른이 되었을 때의 노동은 어렸을 때 받은 선물로부터 배웁니다. 무상성은 모든 계약과 모든 노동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피노키오는 고맙게도 150년 전부터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었고,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습니다.
“저는 피노키오예요. 이제 모두 저를 아시죠. 저는 소년이에요. 처음에는 꼭두각시 인형이었지만요. 저는 고향을 두고 떠나는 아브라함이기도 하고, 삼위일체로부터 온 거룩한 이민자인 예수이기도 하며, 가난한 거지인 프란치스코이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여러분 중의 한 명이기도 해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걷기 시작했고, 달렸고, 멈추지 않았어요. 모두 저와 함께 달려요. 우리는 마침내 언젠가는 약속의 땅에 도착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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