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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녈 토론: EoC 기업경영과 도전과제 - 2024년 10월 30일 대전


길정우 대표: 오전 시간에 EoC 정신을 사회 각 분야에 적용하는 사례들을 들어 보았습니다.

브룬디의 EoC 소액 대출 프로젝트에서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글로리아 뭄파예(브룬디): 소액대출 그룹에서 매우 중요한 규칙은 누가 그룹의 일원이 될 지를 그룹 내에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그룹 구성원 사이의 신뢰입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신뢰 관계에 있는 이웃이어야 합니다. 누군가 갚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그룹 구성원 모두가 그 사람의 형편을 파악하고 서로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룹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며 거기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그룹에서 서로 도와서 갚지 못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또한 이 소액 대출 그룹은 외부에서 후원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룹 내에서 함께 모은 돈을 활용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을 함께 모으는 것입니다. 외부 후원금은 경제금융교육과 경제금융교육에 필요한 자료들을 마련하는 데 쓰였습니다. 1년 간의 교육 후에 그룹은 스스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길정우: 우리나라에도 장발장은행이라는 대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만 EoC 소액 대출 그룹은 그룹 구성원 서로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소액 대출 자금 마련을 위한 기부금 규모의 예측이 쉽지 않아서 연간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글로리아: 각 그룹마다 그 그룹 구성원들의 능력에 따라 모든 구성원이 매주 같은 금액을 내고 함께 모아서 시작합니다. 모두가 매주 그룹 내에서 정한 금액을 내게 되므로 공평성을 유지하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면서 금액을 불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비즈니스를 꽤 성장시킨 사람들은 다른 그룹으로 옮겨 가기도 합니다. 새로운 그룹에서 더 많은 금액을 함께 모아 활용하게 됩니다. 그룹에서 좋은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은 비즈니스가 크게 성공해도 원래 그룹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길정우: 아르헨티나의 DIMACO 디마코의 취지에 공감하는 단체나 기관들을 동참시키는 과정에서 종교적인 신념이나 포콜라레 운동의 정신 같은 것이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에르만 호르헤(디마코 대표): 우리와 일하는 사람들은 저와 다른 신념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할 때 서로 다른 신념이나 가치관은 제쳐 놓고 서로 신뢰의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의견을 나눕니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가 크게 성장하게 되며 더 부유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서로 간의 친교와 나눔으로 부유해집니다.

길정우 대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 세심하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분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특별히 유념하고 있는 자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에르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의도에 매우 민감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정치인들은 그 사람들에게 돈을 줘서 표를 얻고 같이 사진을 찍어 사회적 책임감을 과시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점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가 자라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길정우: 지난 33년간 EoC가 학문적으로는 어떤 성과를 이루었습니까?

아눅 그래뱅 교수(낭트 대학교 경영학과): 어려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학문적으로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과학은 아주 작은 발걸음들로 이루어지며 전에 있었던 학문과 연결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새로운 학문이 갑자기 새롭게 발견된 것처럼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소소한 성과들로 이루어집니다.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와 이탈리아의 동료들이 거대한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경제 사상이 이루어진 배경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면서 현재의 정치경제사상 이전에 시민경제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기심을 통해 부를 추구하며 국가가 발전하는 현재의 정치경제사상이 아니라 시민들의 덕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경제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습니다. 시민경제가 시작했던 당시의 이론에서 출발하여 역사 속에서 퇴색되었던 사상을 다시 끌어내어 연구하면서 현시대에 적용하고 널리 알렸습니다. 또한 시민경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협동조합과 다양한 경제 형태를 찾아 ‘경제가 금융자본주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알립니다. 경제는 지역 경제, 소규모 경제, 사회적 경제, 연대 경제, 협동조합 등등 다양합니다. 경제 과학에서 이런 경제 형태가 많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 활동이 최초에 시작되었을 때부터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이런 경제 방식들의 가치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학교와 회사에서 이런 사상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브루니 교수는 TV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국에서처럼 여러 나라에 연구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연구를 한데 모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소피아 대학원에도 시민경제, EoC 경제 과목이 있어서 조금씩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친교와 나눔의 경제 EoC는 책상에서 하는 것이 아니므로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훌륭한 경제학자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업가들의 사례를 훨씬 더 신뢰합니다. 저는 연구자로서 기업에 가서 삶이 무엇을 이끌어내는지를 보고 관찰합니다. 그 안에서 빛나는 보석을 발견합니다. 이론이 아닌 삶을 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그 삶을 보고 경청하며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심당에서 EoC를 연구할 때 저 혼자서는 EoC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으며, EoC를 살고 있는 기업가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EoC의 다른 면에 대해 말해줄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코넥타 같은 여러 프로젝트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취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분들도 EoC가 무엇인지 알려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길정우: 저는 이 국제포럼에 초대를 받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국제포럼이 어떻게 생겼지?’하고 봤더니 지금 이 단상에 계신 분들이 EoC 국제 위원회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이태리를 떠나서 해외에서 첫번째 모임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아눅 그래뱅 교수가 2년 전에 책을 썼습니다. ‘주는 문화 culture of giving’의 4가지 사례 연구인데 아시아 필리핀의 방코 카바얀과 성심당, 파라과이 사례와 아르헨티나의 디마코입니다. 여기서 성심당의 레인보우 프로젝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심당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총괄하면서 조화롭게 운영하고 계십니까?

임선(성심당 이사): 무지개 프로젝트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기업 운영에 어떻게 적용할 지가 기본입니다. 해마다 한 가지 색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노랑색의 해에는 우리가 어떤 법령을 잘 지키는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지 등을 체크하고 적용합니다. 최근에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2년 동안 (환경보호와 관련된) 녹색의 해를 이어갔습니다. 회사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화롭게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길정우: 성심당에서 EoC를 처음 시작했을 때 EoC의 정신에 충실하다는 것은 자선사업하는 게 아니고 전문가를 투입해서라도 이익을 창출해서 이익을 조화롭게 나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EoC 기업에는 혁신과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성심당의 성장 과정에서 단순한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등의 면에서 같이 나눌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임선: 성심당 초창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직원들이 사내 대회를 통해서 신제품을 냅니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우려는 기업은 많겠지만 저희가 지닌 차별성은 직원들에 대한 보상 등을 사내 경쟁력으로 보면서 ‘직원들이 성장하면서 페이백이 되겠구나’라는 기대를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oC의 가장 큰 특징은 무상성으로, 돌려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자료들을 보면 절대 무상으로 끝나지 않았고 몇 백 배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회사는 더 경쟁력을 지니게 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직원들이 제품의 이름을 정한다든지, 성장해서 창업을 한다든지 했을 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회사에서 독려하고,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고 있습니다. 퇴사하고 창업하신 분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중에는 오늘 포럼에 참가하신 분도 있습니다. 성심당은 관계가 저희의 재화라고 생각합니다. 장기근속자들이 많다는 것도 그런 부분입니다.


길정우: 코넥타는 경제 방식을 바꿔보자고 시작한 것으로 기업가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경제 운영의 시스템을 바꾸는 데 중요한 것은 기업가보다는 정부 기관과 정치인 것 같습니다. 정부 기관과 정치가 더 영향력 있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사이아스 에르난도: 저도 정치가들이 함께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결실을 맺습니다. 정치가들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소외된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방법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진심으로 존중하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그분들을 국회에 모시고 경청해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 본인이 아니라면 소외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유럽의 경우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동등한 위치에서 깊이 있게 경청하는 것입니다.

길정우: 코넥타 대화의 방식도 하나의 교육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할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사이아스: EoC에서 대화는 기본적인 문화입니다. 이 대화의 규칙은 아주 단순합니다. 상대방이 자신 안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적당한 환경을 조성하고 방법론을 적용해서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삶 속에서 진정한 자아존중감을 찾을 수 있는 질문과 답을 통한 대화입니다. 진정한 경청을 통해 치유되며 겸손하게 상대방의 삶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길정우: 착한이웃의 꽃배달 서비스를 받는 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노숙자 분들이 배달한다는 것을 압니까?

강효영(착한이웃 프로그램): 받는 분들이 대부분 여자 분들입니다. 저도 꽃배달 하는 ‘착한이웃’ 분들과 여러 번 동행했습니다만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물터’에서 빨래한 깨끗한 옷을 입고 이발하고 샤워를 하고 식사도 하시기 때문에 보통은 노숙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받으시는 분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꽃을 받으면 여자 분들이 굉장히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꽃배달 하는 ‘착한이웃’들이 거기에서 대리 기쁨이라고 할까요, ‘아, 나도 이런 기쁨을 줄 수 있구나’ 하면서 기뻐합니다. 이 또한 하나의 치유 과정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분들도 자신감,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고 그런 면에서 제가 감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길정우: 소액대출은 왜 여자들만 받아주나요?

글로리아: 처음 프로젝트를 고안할 때 여자들만 대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다수인 건 맞습니다. 왜냐면 브룬디에서는 지금까지도 여자들은 유산을 상속 받을 수 없어서 투쟁 중입니다. 여자들은 대출을 받기 어렵습니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담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취약한 계층은 여성이었습니다. 몇몇 남자들도 요청했지만 다수가 여성입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여성들이 이 소액대출 그룹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여성들의 자부심을 키우면서, 따르고 싶은 모범이 되었습니다.


길정우: 한국사회에서는 기성세대와 MZ세대 간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EoC에서는 신뢰와 소통이 가장 바탕이 된다고 보는데, 직장이나 공동체 안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에르만: 앞서 발표된 사례에서 보듯이 저는 EoC 정신을 살기 위해 기업을 시작했습니다. EoC 정신을 산다는 것은 기업 안팎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진정으로 신뢰하면서 제가 모든 일에 관여하거나 결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하고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기업가로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직원들의 자유를 존중하며 함께 결정하는 ‘보조성의 원리’*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상급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들이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만 상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직원들과 함께 생각하며 회사가 운영되어 왔습니다. 저는 직접적인 회사 운영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제가 저의 사명으로 여기는 EoC 일을 하면서 회사가 잘 돌아가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성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직원들에 대한 이런 신뢰가, 지금 일을 시작하는 신입 청년들까지도 그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매번 언제나 EoC 정신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잘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피곤할 때도 있고 다양한 상황에 따라 화나는 일도 있지요. 하지만 직원들도 우리를 보면서 EoC의 가치관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봅니다. 한번은 제가 공급업체이면서 고객이기도 한데 결제 기한을 지키지 않아 우리를 항상 힘들게 하는 주요협력업체의 결제를 미루려 했습니다. 한 직원이 우리는 EoC 기업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직원은 포콜라레 회원도 아니었고 EoC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지만 저에게 우리의 가치관을 지키자고 했습니다. 거기서 제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EoC의 가치관이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고 직원들에게도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신뢰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역과 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강조하며 어떤 사회적 결정이 이루어질 때, 그 결정의 주체가 가능하면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여야 한다는 원리

임선: 저희도 마찬가지로 신뢰라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신뢰라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것이 가장 우선인 것 같습니다. 상급자가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리를 능력이 있는 직원이 뺏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히 경계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문화가 그가 가진 능력 자체로 충분하다고 믿어주면 상급자는 자기 밑의 뛰어난 직원을 경계하지 않고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문화로 봤을 때 내리사랑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경험한 것인데, 제 밑에 있는 팀장들이 그 밑에 있는 직원들한테 엄청나게 잘하더라구요. 제가 보고 감동을 받아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이사님이 그러시잖아요. 그렇게 해주셨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감동적이었고, 이런 것들이 사랑의 챔피언이라는 문화를 통해서 회사 안에 속속들이 교육되고 훈련되고 연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죠. 하지만 노력하고 있고 처음 오신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회사 안에 MZ세대들이 많아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길정우: 33년 간의 EoC의 경험에서 800여개의 기업이 있는데, 기업의 수가 많은 건가요? 적은 건가요? EoC 정신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뭘까요? 그래뱅 교수가 쓰신 책에서 4가지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각 지역의 문화, 종교적인 배경이 EoC 정신의 확산을 막는 중대한 장애물인지 궁금합니다.

아눅: 저희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이 거대한 EoC 이상에 매력을 느꼈고 우리의 존재 전체로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전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꿈꿨습니다. 전세계로 퍼지긴 했지만 많이 알려지진 않았죠. 왜일까요? EoC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EoC를 알리고 누군가는 ‘EoC는 바로 나다.’ ‘내가 이미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다고 느낀다.’ ‘이것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명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지켜내려는 노력을 많이 했을 것이고 물러서지 않았지만 어려움은 많았을 것입니다. 용기를 잃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함께 해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임영진 대표님을 인터뷰했을 때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연대하고 싶지만 나 자신, 내 존재 전체를 주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면 그것이 돌아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전에 나 자신, 내 존재 전체를 주었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항상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지요. 특히 기업을 경영할 때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피하려고 노력하고 또 방어합니다. 그런데 주는 것은 그 위험을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받고 되돌려주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하면 중독이 됩니다. 큰 힘을 얻게 되어 멈출 수 없게 됩니다. 프랑스 사람들처럼 생각을 많이 하면, 먼저 따져 보게 되고 그러면 시작하지 못합니다. EoC에 대해 비평하거나, 관심은 가져도 시작하지는 못합니다. 이게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문화적인 어려움도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제 바람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한국화된 EoC가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브룬디 EoC, 스페인 EoC 등등이요. 각 기업 또한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아주 느리게 진행될 것입니다.

종교적인 면도 장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마다 다르겠죠. 프랑스에서는 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것은 모두 거부됩니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성심당 직원들이 성심당의 가치관이 가톨릭 신심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우리가 EoC의 가치관을 삶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문화나 종교적 신념을 뛰어넘는 것이며 주변으로 전파될 것입니다. 한국의 크고 작은 기업과 직원들이 이렇게 산다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EoC라고 드러내지 않지만 EoC 정신으로 살고 있다면 강한 힘을 지니고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기업 수를 세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기업이 EoC의 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oC는 기업가가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EoC 문화가 퍼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들도 늘어나면 좋겠고 온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지만 이 모험에 뛰어들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기업가의 길은 엄청나게 힘든 길이지만 EoC 기업은 더더욱 서로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더 불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이아스: 제가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가 EoC 국제위원회에 있으면서 더 큰 책임을 통감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EoC는 다른 프로젝트들과는 다른 척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업의 수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EoC를 대학에서 소개했을 때 교수들은 이런 경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경제 형태가 다루어지고 노벨상도 정치경제 분야가 아닌 다른 경제 방식에도 열리고 있습니다. EoC도 이런 다양한 경제의 문을 여는 데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oC의 성공 여부를 기업 수, 직원 수로 따지는 것은 너무 축소시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oC는 다른 척도로 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길정우: 33년 전에 EoC를 창시했던 포콜라레운동의 창립자 끼아라 루빅은 그 때 이미 EoC는 포콜라레운동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두 분 대표들의 답변을 들으면서 ‘이미 끼아라 루빅의 꿈이 이루어졌다’라고 저는 봤습니다. 아주 가슴에 와닿는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숙자 분들이 꽃배달을 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계신지요?

강효영: 핸드폰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핸드폰과 길찾기앱 사용법을 알려 드리고 처음에는 ‘벗’으로 같이 동행하면서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길정우: 포콜라레 회원이 아닌, 심지어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EoC에 참여할 수 있나요? 특히 EoC 정신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독립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한가요?

임선: 너무 간단한 답변입니다. 물론 당연하고 굉장히 환영합니다. 저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EoC 정신이 기관 안에, 단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씨앗이 뿌리를 내려서 그대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희망하는 모델입니다.

이사이아스: 예!

아눅: 그런 예가 이미 많이 있습니다.


길정우: EoC 기업의 경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는 문화가 주주들로 확산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혹시 그런 사례가 있는지요? (성심당에서 그렇게 하고 있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EoC의 확대를 위해 상장사나 중견기업도 참여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이런 정신을 잘 전달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아눅: 기업가가 자기 회사를 경영하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여러 주주들이 있는 큰 회사의 경우는 복잡하죠. 프랑스에서 EoC 포럼이 있었는데 공식적인 EoC 기업가는 아니었지만 이 정신을 살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의 CEO가 참석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는 주주들에게 EoC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EoC의 가치관을 최대한 적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프로젝트들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방향으로 잡았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이것이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주들이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런 환경에서 당면하게 되는 위험이지만 그가 시도했던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하면 주주들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연구했던 필리핀의 방코 카바얀은 많은 EoC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가족 기업이었는데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EoC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에게 이 은행을 팔고자 했습니다. 사회적 기업 등 가장 비슷한 주인을 찾았고 훨씬 큰 은행에 팔게 되었는데 그 은행은 EoC 정신으로 운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연구하러 갔을 당시에는 그렇게 방코 카바얀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직원들을 인터뷰했을 때 이 상황에서 EoC 문화는 어떻게 될지 물었는데 직원들은 확신에 차서 우리는 계속할 것이고 당연히 새로운 주인에게도 이 문화를 전파할 것이라고 해서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팬데믹 전이었고 2년 후 이 책을 내면서 다시 연락을 취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큰 은행의 여러 지점들이 문을 닫았는데 방코 카바얀의 지점들은 모두 살아 남아서 새로운 투자자들이 이 문화를 다른 지점들에도 전파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 믿음이 너무 작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직원들이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이 문화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길정우: 성심당, 나눌수록 커지는 기적의 빵집이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을 벗어나 폭넓게 확산할 생각이 있으신지요?

임영진(성심당 대표): 잘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대전에만 있다, 희소 가치가 있다. 암만 수입이 많아도 여기를 지키자.’라는 겁니다. EoC는 세상을 바꾸는 거죠. ‘작지만 빵집 하나가 이렇게 살고 있는 데도 잘 되더라’, 세상 살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고 있는데 EoC를 통해서 길을 터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성곤(일치를 위한 정치 한국본부 대표): 오늘 발제들을 들으며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우리 민족의 갈등을 해소할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즉, EoC 정신이 경제적 문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진보와 보수 세력 간의 갈등입니다. 보수당은 주로 기업,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며 자유를 강조하고 진보당은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며 평등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또 우리 한민족은 남한과 북한으로 80년째 군사적으로 대립해 있으며, 북한은 공산주의, 남한은 자본주의로 그리고 공산주의는 평등을 강조하고 자본주의는 자유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EoC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3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자유와 평등이 사랑이라는 것을 매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 평등, 사랑은 프랑스 혁명이 추구했던 3대 가치입니다. EoC가 남한 사회의 진보, 보수 간 갈등과 남북한 사이의 대립, 나아가 미국과 중국의 대립조차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EoC를 기업의 정신으로 뿐만 아니고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철학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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