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금융의 어제와 내일 - 루이지노 브루니 특별 강연(Lectio Magistralis)
- EoC Korea
- 6월 24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25일

"뿌리에 날개를 달다 – 협동조합 금융의 과거, 현재, 미래"
2025년 1월 22일, 리파트란소네(Ripatransone) 및 페르마노(Fermano) 은행의 창립 120주년을 맞아 메르칸티니(Mercantini) 극장에서 루이지노 브루니(Luigino Bruni) 교수의 특별 강연이 열렸다. "뿌리에 날개를 달다 – 협동조합 금융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협동조합 모델이 어떻게 역사적 뿌리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미래를 열어가는지를 이야기했다.
공공의 행복과 신용협동의 역사
공공행복(public happiness)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사는 피렌체 인근의 시민경제학교에서는 최근 안토니오 제노베시(Antonio Genovesi)의 제자가 남긴 1760년대 필사 강의노트를 발견해 출판했습니다. 제노베시는 이탈리아 시민경제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사상에서 중심 개념은 '행복'이 아닌 '공공의 행복'입니다. 그는 “행복은 오직 공공적일 때만 존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거리, 광장, 일터, 사회적 관계(시민의 삶과 우정)과 연결된 것이고, 뭔가를 성취한 뒤 미래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삶을 살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이탈리아의 신용협동 전통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행복은 모두의 것이며,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면 결국 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돕는 것이 건전한 사회의 바탕이고, 이는 이탈리아의 신용연대(solidarity credit) 정신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시작된 신용의 역사
1400년대 말,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함께 몬테 디 피에타(구호은행)가 탄생했고, 이어 몬테 프루멘타리오(곡물은행)도 등장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자금을 모아 함께 운영한 이 공동체 금융 모델은 오늘날의 사회적 금융의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1905년, 지역의 사제들과 시민들이 설립한 농촌신용기금으로 이어졌고, 이 기금은 500년 전 몬테 디 피에타의 정신을 되살리는 시도였습니다. 비록 1860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본당 중심의 자산이 국가와 지방정부로 넘어가면서 대부분 단절되었지만, 우리는 이 전통을 다시 복원해가고 있습니다.
곡물은행과 사람의 신용
당시 금융 시스템에서 담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보증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계약서나 영수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가난한 마을에서 종이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전통 경제 모델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협동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신용 구조에 있습니다.
곡물은행은 곡물을 무상으로 나눠주지는 않았지만, 곡물이 없는 명절은 사람답게 사는 삶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명절에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는 건 단지 굶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쁨을 박탈당한 상태로 봤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약 5% 정도의 이자를 받고 곡물을 빌려주었고, 가난한 농부에게는 곡물을 되로 빌려주어, 그들이 이를 심고 수확해 다시 되가 넘치게 갚는 방식이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을 땐 아예 곡물을 돌려받지 않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자립을 돕는 구조,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경제 모델이었습니다.
이탈리아식 협동과 나눔
이탈리아의 전통 경제는 자선과 시장, 무상성과 계약, 나눔과 상호성을 혼합한 구조입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처럼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자선은 자선”으로 분리하지 않고(막대한 수익을 내서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방식), 삶과 경제가 하나로 얽혀 있었습니다. 물론 이 구조가 때로는 부패와 갈등의 여지도 있었지만,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모델이었습니다.
15세기에는 “곡물은행이 이자를 받아도 되는가?”라는 논쟁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고리대금은 죄라고 주장했지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이자를 사익이 아닌 운영비용으로 보았습니다. 이자가 없다면 은행이 사라지거나 개인 손에 넘어가, 공동의 재산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은행은 이윤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 아니라, 공익적 신용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곡물’: 교육, 건강, 돌봄
오늘날 우리가 나눠야 할 곡물은 교육, 건강, 돌봄입니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열망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미래도 없습니다.
건강은 고령사회에서 필수 자원이 되었고,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돌봄(Cura)은 이제 국가나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철학자 제니퍼 네델스키는 “모든 사람이 파트타임 노동으로 노동시간을 줄여(더 나은 임금을 받으면서), 파트타임 공동체 돌봄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국무총리부터 실업자까지, 모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이나 마을의 공동체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용: 여전히 생명을 살리는 자원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은 말했습니다. “한 도시 안에, 누군가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도시 전체의 병이다.” 신용은 지금도 생명을 살리는 자원입니다. 알고리즘이나 주식이 아닌,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신용은 인간의 기본권”이라 했습니다. 신용 없이는 삶을 계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용조합은 정부나 자선단체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채우는 조직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아직 발전되지 않은 지역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으로 미래의 중심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은행과 존엄의 회복
이탈리아 헌법에는 ‘은행’이나 ‘기업’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제 은행은 사리사욕적인 부의 추구 등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엄을 돌려주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은행가는 자랑스러운 직업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다 펠트레(Bernardino da Feltre)는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말고, 그러나 세상을 돌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손에 은행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은행을 운영하면서도 성인이 될 수 있었던 시대. 이제 우리가 그 정신을 다시 되살릴 차례입니다.
우리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이제 그것을 되살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작은 도시가 협동과 연대의 중심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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