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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경주 마리아폴리] 성심당


성심당 - 임선


혹시 대전의 빵집 성심당 들어보셨어요? 3대 째인 저는 부모님과 함께 빵과 외식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1956년 대전역 앞 찐빵집으로 시작해 EoC기업이 된 성심당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함경도 함주에서 독실한 카톨릭 신자셨던 조부모님은 북한에서는 더 이상 종교의 자유도, 가족의 안전도 보장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1.4후퇴 때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육로는 막혀 있었고 마지막 희망은 흥남부두의 마지막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 뿐이였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기적처럼 배에 탄 할아버지는 “주님! 저희 가족이 살아서 남한에 가게 된다면 남은 생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를 바쳤고, 이 기도는 창업주 부부가 돌아가실 때까지 지키신 하느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어른들과 같이 살던 저희들도 나눔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피난살이 후 서울로 가던 중 기차고장으로 대전에 내리게 되어 대흥동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원조 밀가루 2포대를 주셨고 그 밀가루로 대전역 앞에서 찐빵집을 열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가난하고 배고픈 생활이었지만 하느님과의 약속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67년째 이어지며 직원들 사이에도 이는 자연스런 나눔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은 무조건 “주어라. 받을것이다”의 복음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있었고 그 백배의 상은 저희들이 매일매일 체험하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부모님은 가업을 이어 받고 히트상품인 튀김소보로 개발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회사는 더욱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던 중 본당신부님이셨던 라자로 추기경님을 통해 포콜라레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아세례로 몸에 베인 신앙이었지만 복음을 글자 그대로 사는 것과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는 것은 매우 신선하였습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내가 함께 있겠다.”라는 복음을 전적으로 믿고 실천하셨습니다.

항상 회사의 방향을 결정할 때 그 사이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결정하셨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직원들과 가족같은 빵집을 만드는 것을 꿈꿔왔지만 경영주와 직원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 포콜라레에서 주최하는 국제 EoC 학교에 참가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부모님은 심장이 쿵쾅거려 쉬는 시간마다 경당에서 느낀 점을 바로 나누셨습니다. 그때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비전을 보게 되었고,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단지 내 가족과 직원, 우리 회사만이 아닌 이타적인 시각으로 경영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EoC를 알기 전에는 단지 신앙인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사업을 해왔지만 EoC 기업방식을 알고 난 후 빵은 그 이상의 가치로 보였습니다.

EoC 학교를 다녀온 후 곧바로 회사의 목표를 로마서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 정했습니다.

흔히 서비스업에서 고객은 왕이다 라는 기존 개념을 넘어 모든 이가 누구일까에 집중하였습니다. 모든 이는 남–녀-노-소, 가난한 이-부자 그리고 고객-직원-협력업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잠재적인 경쟁자. 회사를 떠나 창업하는 직원들까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 안에서 형제애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로쏘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하여 투명경영을 목표로 전 직원에게 매출과 결산을 공개하며 100프로 정직한 납세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당시 회사는 작은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50억의 부채가 있어서 재무상태가 매우 어려웠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어 EoC 기업으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2005년 이 시기에 회사는 많은 부채와, 신도심 개발로 인한 원도심 이탈현상과 그로 인한 매출 감소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활기가 빠진 거리를 보며 '왜 하필이면 이 곳에서 빵장수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67년 전 상권이 전혀 아닌 이곳에 오직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신앙생활 하기 위해 이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대전의 원도심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공장에 큰 화재가 났습니다. 저녁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엄마는 불타는 것을 보며 다시 성체 앞에 달려가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행복이십니다” 를 기억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이구나 생각하던 순간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재 다음 날 직원들은 “잿더미가 된 회사 우리가 살리자” 라는 플래카드를 만들고 화재 현장을 복구해 나가며 우리는 진짜 한가족이 되어갔습니다.

매장 인테리어를 할 때 우리가 어떤 빵집의 모습으로 가야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멋지게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부자가 와도 초라하지 않고 가난한 이가 와도 주눅들지 않는 따듯한 가정같은 빵집을 만들자 결정했습니다.

정체성을 찾은 성심당은 재오픈 후 화재 전보다 30%의 매출이 늘었습니다. 대전 시민들은 다시 성심당을 찾아주셨고 직원들도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그즈음 저희는 무지개프로젝트를 실행하였습니다, 경영주의 생각이 전 직원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실천지침을 7가지 색으로 분류하여 공유했습니다.

빨간색, 올바른 재화의 활용을 시작으로 기업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여 직원들과 친교의 관계를 갖고, 그들의 작업환경과 안전, 휴가,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며, 주종관계가 아닌, 우정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처음 시작 때 과연 이 많은 직원들이 함께 공감하며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신입사원은 물론 아르바이트까지 함께 기업 문화를 밀도 있게 채우는 것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1년에 하나의 색을 정해 더 집중적으로 실천하고 있는데 저희가 초록색 환경부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2018년 10월 로마에서 열린 예언적 경제 포럼에 참여한 후 기업은 돈이 중심이 아닌 지구를 살리는 경제방식을 택해야 함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고 기업주 또한 하늘이 보여주는 이 시대적 징표를 기업 안에서 실행해야함을 결심하였습니다.

바로 초록색의 해로 정하고 귀찮아도 환경! 불편해도 환경! 이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 눈앞에 놓인 환경과 가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책임과 절박함을 가지고 당장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만들어갔습니다.


다음은 2019년부터 3년간 진행한 내용입니다.

매월 15일을 그린데이로 정했습니다.

서랍속 잠자는 나무젓가락 (14,000개) - 빵집 앞 떡볶이 가게에 나눔,

안먹는 약 (23.46KG) - 보건소

종이백(리유즈 코너 운영)

폐건전지(12,222 개) - 구청

플라스틱 용기(락앤락과 연계) 회수

물휴지는 (아예제로)

그 외 우산 71개, 도서113개, 볼펜 316개

매주 발행되는 회사 신문에 집과 회사에서 에코 삶을 산 기사를 올리고 공유하며 직원들 중에는 에코오지라퍼와 에코투사같은 활동가들이 한달에 한번씩 만나 자신의 매장에 대한 에코활동을 나누고 있습니다.

고객들과 꾸준히 환경 워크샵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왜 환경을 살아야하는지 토의합니다. 빨대거북이 영상을 보고 빨대 사용 안하기를 약속하기. 직접 에코챌린지 캘린더를 만들어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환경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도록 합니다.

빵집 안에서 지속가능한 환경활동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한달 평균 7만 1천개의 우유팩을 사용하는 우리가 정확한 분리배출을 한다면 많은 나무의 자원을 절약할 수 있을텐데... 그러나 빵을 만드는 일은 고강도의 육체노동이라 셰프들에게 업무 외에 우유팩 분리수거와 배출을 요청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우선 저부터 아파트와 성당에서 경험치를 쌓고, 이 경험을 제가 속한 부서에 공유했더니 저희 팀 50명이 참여를 희망하였습니다. 에코 기사에 경쟁하듯 매주 인증샷이 올라왔고 얼마 되지 않아 전 매장 우유팩을 분리 배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경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업무가 되어 힘들었습니다. 마침 환경공단과 MOU를 맺게 되면서 지자체에서 수거차량을 지원해주어 성심당 전 지점 수거는 물론 대전의 다른 빵집 두 군데도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인으로 시작하여 회사, 그리고 지역 빵집들이 연대를 맺고 지자체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좋은 사례가 된 것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저희 회사에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챔피언 제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료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이는 인사고과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 지침 중 가장 우선 시 됩니다. 또 하나는 에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경험담들은 매주 사내신문에 올라오고 1년이면 사랑경험담약 2,000건, 에코경험담이 1,068건 됩니다. 연말이 되면 회사 시상 중에 가장 영예롭고 큰 상으로 사랑의 챔피언과 에코 챔피언을 수상하고 매년 이러한 경험담들은 책으로 발간됩니다.

사랑의 챔피언 제도는 점차적으로 퍼져나가 회사 안에서는 사랑과 나눔의 문화가 되고 국내는 물론 해외제과업체에서도 복음정신을 바탕으로 한 EoC 기업방식을 배우러 오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저희들은 전문 경영인이 아닙니다.

67년 전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한 찐빵집에서 전국에서 방문하는 빵집이 된 이유는 뭘까 생각해봅니다

32년 전 브라질에서 끼아라께서 기업인들에게 EoC정신을 요청했고 그들이 즉시 받아들인 것처럼 저희도 단순히 복음만 일터 안에서 실천하고자 했고 직원과 고객을 사랑하고자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랑과 나눔의 문화가 차곡차곡 쌓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심당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주변 상점과 주차장은 붐비기 시작했고 한산하던 거리는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주말이면 대전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늘어났습니다. 이렇듯 작은 빵집 하나가 빵을 통해 도시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자신의 직업과 일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하신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내가 만약 모두를 위한 경제, EoC를 알지 못했다면 그저 성공한 착한 빵집 사장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EoC를 알고 난 후 저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공동선을 이루고 ,

보편적인 형제애를 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저는 나의 일을 통해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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