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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EoC Global Gathering – 루이지노 브루니


루이지노 브루니: 예언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보는 것이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유토피아일 뿐일 것입니다. EoC 모두를 위한 경제의 본성이 예언적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고, 끼아라와 그 카리스마(은사), 그리고 다른 많은 초창기의 사람들에게서 태어난 우리 각자가 그 본성을 지니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선각자들은 ‘이미 있는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EoC가 33년간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와 사회, 시민적 책임감이 높아지고 있는 몇몇 지역에서는 EoC가 뿌린 씨앗의 역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EoC는 1991년에 태어났을 때보다 지금 현재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친교와 나눔의 경제가 이전보다 더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끼아라는 위대한 영감으로 시작하셨지만 그 당시의 상황에 맞춰서 할 수 있었던 것을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히 달라야 하고 좀더 나아져야 합니다. 33년간의 노동, 사랑, 헌신, 끈기는 ‘이미 있는 것’을 성장시켜 ‘아직 없는 미래’를 꽃피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이아스: 지난 몇 년간 EoC와 같은 방향을 지닌 여러 다른 운동(movement)들도 시작되면서 EoC가 1991년에 시작되어 주류 경제계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보다 혁신적이지 못하다고들 합니다. EoC는 좀더 열린 태도로 다른 운동들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EoC의 본성을 더 심화시키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다른 운동에 흡수돼 버릴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루이지노 브루니: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폐허가 된 성 다미아노 성당을 다시 짓기 시작했을 때는 주님께서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말씀을 성 다미아노 성당을 재건하라는 것으로 알아듣고 그렇게 했지만 그 ‘주님의 집’이 인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먼저 우리의 집을 다시 지었습니다. EoC는 처음 몇 십년 간 포콜라레 운동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에는 이 새로운 경제가 포콜라레 내의 공동체와 기업, 빈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 전부터 우리 모두는 한 도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한 기업, 한 운동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운동 만으로 지금의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아 태어난 운동이 시작될 때 섭리적인 순수함이 필요했지만 그 단계가 지나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서 이 새로운 경제, 친교와 나눔의 경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소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콜라레 운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10년간 프란치스코의 경제, 시민 경제 등과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브라질과 프랑스, 다른 나라들에서도 여러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1991년에 끼아라께서 생각했던 것보다 EoC가 더 잘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끼아라께서 제안하셨던 것에 더 가깝게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그 때보다 더 훌륭한 경제학자들과 학생들이 EoC에 관심을 갖는데 이들을 공동체나 운동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류 전체를 위한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끼아라는 1991년에 빈곤 없는 경제,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기업가, 주는 문화가 경제 문화가 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1990년대에 줄 수 있었던 답을 제시하려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문제들이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끼아라께서 던진 카리스마적인 질문에는 충실해야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답은 업데이트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은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 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나라에 부자와 빈자, 불평등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인터넷 등 많은 불평등이 있고, 환경 문제도 1991년에는 지금보다는 덜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끼아라의 질문에 충실하되 오늘날 우리의 답은 바뀌어야 합니다. 예언적 은사를 지닌 EoC가 오늘날에 맞는 답을 찾지 않고 옛날의 답변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EoC는 예언적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된다거나, 윤리 경영을 하면 된다거나, 좀더 선하고 너그러운 경제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EoC는 한 국가의 정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 영성에서, 예언적 비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oC가 경제의 예언적인 면을 유지한다면 참다운 친교와 나눔의 경제가 될 것이고, 20년 후에는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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