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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C 기업 ‘지식백과’ 소식 2호

무상성(gratuitousness)과 행복의 역설(paradox of happiness)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병기 교수


무상성(無償性, gratuitousness)은 ‘보답을 생각하지 않는 나눔 또는 내어줌’을 말하는데, 주는 이가 받는 이에게 아무런 요구 없이 건네는 선물이 무상성의 가장 좋은 예이다. 주는 이의 선의가 완성되기를 바라며 베푸는 무상성에는 인간관계의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결합의 가치가 있다.

무상성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되받을 의도 없이 그저 주는 선물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언젠가는 그 보답을 어떤 형태로든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완전한 무상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주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돌려주지 않고, 그리고 그 선물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맥락적 연계성이 상당히 희박한 상황이라면 대체로 무상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행복의 역설(paradox of happiness)은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1974)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고 큰 반향을 일으켜 오늘날 경제학에서 행복을 다루는 계기가 되었다. 인구통계학자인 그는 국가 간의 비교를 통해서 행복과 소득 간에는 명백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 즉 소득의 증가는 수입이 적을 때는 매우 중요하지만 수입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행복에 대한 그 영향력이 훨씬 적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EoC 연구회에서 출판한 L. Bruni교수의 역서 『콤무니타스 이코노미』 232쪽의 그림 <수입과 행복의 관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득의 증가는 처음에는 행복의 증가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기여하지만 어느 수준, 즉 임계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행복의 증가에 역행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소득은 노동 시간 및 노동 강도의 증가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마련인데,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피로감 및 스트레스를 전제로 하는 노동 시간 및 노동 강도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소득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행복감을 그만큼 증가시켜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행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소득으로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여기서 노동이란 단순히 고용계약에 의해 제공하는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기 소유의 재산이나 지식 및 사업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피로감 및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행위라면 모두 노동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행복의 역설이 단순히 노동자나 경제적 약자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업가나 전문직 종사자를 위시한 모든 고소득자에게도 적용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콤무니타스 이코노미』 232쪽의 그림 <수입과 행복의 관계>에서 무상성이 ‘잠재적 변수’라는 점이다. 동일한 소득이라고 하더라도 관계성이 추가되면 행복 수준은 더욱 향상된다는 것이다. 역으로, 동일한 소득이라고 하더라도 관계성이 더 많이 희생되었다면 행복 수준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하락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무상성, 즉 ‘보답을 생각하지 않는 나눔 또는 내어줌’을 통한 인간관계의 결속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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