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C 기업 ‘지식백과’ 소식 6호
관계재(Relational goods)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병기 교수
고대 그리스철학(아리스토텔레스학파)와 중세 스콜라철학(토마스학파)의 전통을 따르는 ‘좋은 삶’ 또는 ‘행복한 삶’은 비(非) 도구적 관계(non-instrumental relations: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를 초월하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 즉, 행복이론 또는 인간성이 고양된 상태에 관한 핵심개념이 관계재(relational goods)이다.
대표적 학자로서 베네데토 구이(Benedetto Gui, 2002 & 2005)는 관계재를 “만남(encounter)”이라고 불렀다. 그는 “판매자와 잠재적인 구매자, 의사와 환자, 두 동료 사이, 심지어는 같은 가게의 두 고객 사이”에서 전통적인 결과물(거래, 생산적인 업무수행 또는 서비스 제공)의 범주를 넘어서는 관계를 토대로 하는 다른 유형의 무형적 산출물이 생산되는데, 이것이 바로 관계재라고 주장했다.
관계재는 몇 가지 중요한 속성을 갖는다. 첫째는 정체성으로, 거래 당사자 간에 익명성이 존재한다면 그 재화는 관계재가 아니다. 둘째는 상호성으로, 거래 당사자 서로 간의 감정과 인식이 명확하게 존재해야 한다. 셋째는 동시성으로, 관계재는 그 생산과 소비활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넷째는 동기부여로서, 관계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다섯째는 발현적 요소로서, 거래의 애초 주체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관계 안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관계재이다. 여섯째는 무상성으로, 관계재는 이해타산을 넘어서서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관계재는 재화이지만 상품은 아니다. 관계재는 필요성을 충족시키므로 가치를 지니지만, 무상성 때문에 시장가격이 매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재에는 항상 기회비용이 따른다.
관계재를 ‘주요 관계재(primary relational goods)’와 ‘비주요(또는 부차적) 관계재(non-primary relational goods)’로 나누어 생각할 수도 있다. 비주요 관계재는 상호작용과 만남에 의해 형성된 관계재에 다른 구성요소가 부차적으로 합산된 결과로 형성되는데, 관계성의 부재로 인해 상품의 가치가 무효화되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친절하지 않은 이발사와 손님 사이에 관계재가 형성되지는 않더라도 이발이라는 서비스는 받을 수 있다.
한편, 유사(또는 허위) 관계재(pseudo-relational goods)도 있다. 오늘날 기술의 발달에 의해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점점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우에서 발생한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은 유사(또는 허위) 관계재를 판매하는 대표적인 시장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타인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독서나 산책을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는다.
매우 낮은 가격과 위험부담률에 기초한 TV 프로그램이나 가상의 친구관계는 클릭 몇 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로 인해 우정이나 충실한 결혼생활을 위한 투자는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관계가 붕괴될 위험성은 무한히 커진다. 유사(또는 허위) 관계재에 기초한 상호작용에는 육체와 혈연관계의 고통스러운 취약성, 즉 ‘상처’라는 관계재의 핵심 요소가 빠져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