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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EoC의 선구자, 김신혁 야고보, 그 확고한 삶의 증거


모범 사례들

“모든 관계에서의 충실성과 항구성, 그리고 투명성”: 한국의 첫 번째 EoC 기업가, 김신혁 야고보가 남긴 유산

한국 EoC 위원회 정리

2020년 5월 15일 『모두를 위한 경제, EoC』 국제 웹사이트에 게시


“이 회사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며, 회사의 경영은 언제나 투명해야 합니다. 경제의 모든 차원에서 그러해야 합니다. 개인 경제에서나 공동체 경제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한국 EoC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김신혁 야고보(가톨릭 세례명)가 언제나 충실히 지키고자 했던 원칙들이다. 야고보는 오랜 투병 끝에 지난 4월 28일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20여 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인해 휠체어에 의지하여 생활하기 시작해야 했고, 언어 장애도 겪게 되었다.


간략하게나마 그의 약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3년에 태어난 야고보는 열네 살에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이후에 온 가족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인도하게 되는데, 당시는 한국 전체 국민 중에 가톨릭 신자들의 비율이 아직 매우 적은 때였다.

야고보는 1967년 포콜라레운동(Focolare Movement)을 알게 된다. 이는 1969년 한국에 첫 포콜라레가 진출하기도 전이었다.

1970년 카리타스(가톨릭 세례명)와 결혼을 한 야고보는 이후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두게 되는데, 그중에 한 아들을 먼저 천국에 보내야 하기도 했다.

1974년 야고보는 철학 전문 서적 출판사인 『서광사』 설립한다. 당시 한국 출판업계에서 철학 서적으로는 많은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것이 자명했지만, 야고보는 자신이 한 선택에 계속 충실했다. 그는 철학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여러 주요 서적들을 한글로 꾸준히 펴냈고, 그러면서 차츰 『서광사』의 인지도는 높아지게 되었다. 마침내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야고보는 2018년 ‘책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야고보는 언제나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곧 ‘사회교리’를 충실히 따르고 싶어했고,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원의를 지니고 있었다. 1991년 (포콜라레운동의 창설자) 끼아라 루빅이 『모두를 위한 경제, EoC (Economy of Communion)』를 제창(提唱)했을 때, 야고보는 이에 깊이 공감하고 즉시 동참하게 된다. 한국 포콜라레운동에 참여하는 기업가들을 위한 모임도 그의 주선으로 꾸려지기 시작했고, 이로써 기업가들이 함께 EoC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야고보는 이 모임을 통해 여러 기업가들을 도왔는데, 그런 도움을 받은 기업가 중에 한 사람인 이준녕 안드레아(만 62세) (주)한국사이버테크 대표는 다음과 같이 그를 회고한다.

“야고보는 당신의 회사 직원들과의 삶에 대한 경험담을 들려주곤 하셨는데, 그 증거의 삶은 언제나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야고보는 사장 개인의 돈과 회사의 돈을 엄격히 구분하는 법을 저에게 가르쳐 주셨고,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회사의 경제적인 위기에 대비하도록 회사의 기금을 준비할 것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 제안에 따르면서 저희도 기금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몇 년간 저희 회사 경영 여건이 어려워졌을 때에도, 이런 준비 덕분에 회사가 나름대로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1992년 6월에 출판사 『서광사』는 설립 이후 가장 큰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야고보는 끼아라 루빅이 EoC를 제창(提唱)하면서, “EoC 기업의 운영은, 이 기업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맡겨져야 합니다.”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회사의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재무제표상의 모든 지출 항목들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면서, 삭감해야 할 몇몇 지출 항목들을 찾아냈다. 이것은 야고보 자신에게나 직원들에게나 수고와 불편함이 수반되는 방식이었지만, 그해 연말에 『서광사』는 작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야고보는 그 이익금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로 나누어 주는 한편, 처음으로 EoC 기여금도 내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주요 거래처의 납품가격이 1년 동안 실수로 잘못 청구된 것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래서 해당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금액은 야고보가 EoC를 위해 내어놓은 액수와 비슷했다. 야고보에게는 이 일이 복음에서 말하는 백배의 상처럼 느껴졌고, 그때부터 『서광사』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EoC 기금 마련을 위해 기여금을 내어주게 되었다.


1999년 12월 야고보는 뇌출혈을 앓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로써 그의 기나긴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게 되는데, 20여 년간 지속된 이 길은 부인 카리타스와 그의 온 가족이 함께 가득한 사랑으로 동반한 여정이었다. 부인 카리타스(이숙 씨)는 야고보를 대신해 『서광사』의 운영을 맡게 되었고, 예전처럼 EoC의 삶을 계속 실천하면서 항상 야고보와 함께 회사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하곤 했다.

최근 몇 달간 야고보의 건강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졌고, 몇몇 고통스러운 단계들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8일 야고보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가운데에 평온하게 천국으로 떠났다.


포콜라레운동의 현現 회장 마리아 보체(Maria Voce, 엠마우스) 여사는 야고보의 선종에 즈음하여 이 운동의 전 세계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야고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모두를 위한 경제, EoC (Economy of Communion)』의 원칙들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김 야고보는 EoC의 원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나눔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 자신의 소망에 대한 명확한 답이라고 느끼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위기의 순간들에도 이러한 나눔과 공유의 노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의 빈소를 찾아 마지막 고별 인사를 하고자 했다. 그중에는 한국 EoC의 두 책임자인 (대전 성심당의) 임영진 (페데스) 대표와 김미진 (아마타) 이사도 있었는데, 이들은 야고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야고보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모범이셨고, 참된 선구자셨습니다. 우리나라 EoC에 견고한 초석을 놓아 주셨습니다.”


이태리어 원본 기사 웹사이트:

https://www.edc-online.org/it/best-practices/16069-corea-la-testimonianza-forte-del-pioniere-edc-jacobo-ki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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