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거대한 악惡이 낳은 좋은 결실



작금의 시련과 희생자들, 어제의 역사


2020년 12월 31일 Avvenire 아베니레 지에 게재


집단적 차원의 공포와 죽음은 2020년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우리는 어느새 거대한 집단적 공포를 잊고 있었으며, 죽음을 가족 안에서 개개인이 마음 속으로 느끼는 외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애도의 고통을 참아내기에는 나의 집이 턱없이 작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마저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죽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체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폭풍 속에서 우리는 같은 공포를 느꼈고, 죽음의 공포를 공유했으며, 그것을 공유했기에 그 폭풍은 우리를 압도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한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부유한 이탈리아에서 죽은 후에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미덕, 자비, 그리고 (가톨릭) 민간 신앙으로 가족, 기업,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부모와 조부모들이고, 전쟁의 잔해인 돌들을 쌓아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일구어낸 소작인, 농부, 주부들이다. 우리 모두는 그들 대부분이 홀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고통 받았다. 무언가 잘못되고 매우 부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행복은 나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위대한 도덕道德적 지표를 따라서 걸어온 세대였으며,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가치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로를 희생했다.


특히 더 많은 여성들이 전문직으로 피어날 기회를 포기하면서 자녀와 부모를 돌보며 젊은 시절을 보낸 후, 어느덧 나이가 들고 집 밖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얻은 첫 번째 교훈은 우리에게 ‘고령화 문화culture of ageing’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지난 몇 십 년 동안 과거 수천 년간 배운 고령화와 죽음의 좋은 방법들을 버렸고, (막연히 새로운 방법을 찾기를 기대하면서) 보살핌과 돌봄에 대한 지대한 공로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로 하여금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빚이 소멸되어 가면서 우리가 깨닫게 된 것으로 여기에도 올해의 고통의 근원이 있다.


역사는 또다른 끔찍한 세월들을 겪어 왔다. 서기 536년에 불가사의한 (화산재) 안개가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를 거의 1년 반 동안이나 완전한 암흑으로 몰아넣었다. 여름에 눈이 내리고 유럽에서 중국에까지 농작물이 피해를 입어 극도로 심각하고 긴 기근을 초래하면서 2천년만에 가장 추운 10년이 시작되었다. 1347-48년에는 흑사병이 도래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인 엄청난 재앙이일어났다. 특히 큰 타격을 받은 플로렌스에서는 그 재난에 의해 세 가지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마태오 빌라니Matteo Villani와 다른 플로렌스 작가들의 연대기들에 따르면, 1348년 말은 삶에 대한 비뚤어진 도덕적 관념과 더 형편없는 향락이 시작되었다. 그 모든 죽음 이후 삶으로의 복귀는 다시 찾은 삶의 잔에 남은 마지막 방울까지 만끽하기 위해 사치를 좇아 헐떡이게 했으며, 페스트로 죽은 사람들이 남긴 엄청난 유산에 의해 증폭된 새로운 낭비와 부패가 나타났다. 플로렌스 사람들의 금고로 흘러 들어간 그 많은 돈은 결국 잘못된 주머니로 들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효과도 있었다. 도시의 수장들은 페스트로 파산한 채무자들을 돕기 위한 조치를 채택했고, 1352년 부실 채무자들을 돕기 위해 플로렌스에 예술과 장인 기술의 권리를 위한 사무실을 설치했다. 1349년에는 플로렌스의 책과 예술작품에 대한 투자와 도서관에 큰 발전이 있었다. 시 정부는 플로렌스 스튜디움(대학)Florentine Studium을 다시 설립했고, 산타 크로체Santa Croce와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의 도서관을 크게 확장했으며, 역사적 기록물 구입을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만들었다. 이러한 문화적 투자는 흑사병의 가장 예기치 못한, 놀라운 수반효과 가운데 하나였던 ‘시민 휴머니즘Civic Humanism’의 시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 도미니코 수도회와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들은 대재앙 이후 다시 시작하는 방법은 경쟁적인 사치가 아니며, 죽음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인생의 쾌락을 찾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며, 새로운 문화의 상징들이 르네상스에 의해 쓰여진다면 그들이 부활할(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유럽이 첫 번째 천 년대의 최악의 기근을 겪고 있던 서기 540년, 베네딕토 성인은 몬테카시노Montecassino에서 규칙을 썼는데, 이것은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재탄생에 필수적이었던 서양의 놀라운 수도원주의monasticism의 시절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플로렌스의 페스트는 데카메론Decameron을 탄생시켰다. 1349년 전염병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보카치오Boccaccio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계 문학의 최대 걸작 중 하나인 데카메론Decameron 머리말의 첫 부분을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인정(연민)’입니다"라고 시작한다.


예술가와 예언자 없이는 커다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회복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위로consolations’이다. 경제적 지원은 특히 채무자들의 파산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오히려 가는 길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종종 잘못된 결과에 봉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예술가들과 예언자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우리를 구원했던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만약 우리가 예술가들과 예언자들이 태어나게 한다면 우리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이 위기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RECENT POS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