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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놀이터 ETC 협동조합


문화창조놀이터 ETC는 지역에서 활동하던 27명의 문화예술가들이 지역문화와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가족의 관계를 회복하며 가정의 소중함을 되찾기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지금은 도시와 재생사업, 지역의 사람과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사회적 가치 실현까지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도예작가인 박성백은 국내와 국제 공모전에서 큰 상을 받고 개인전도 10여 회 개최하였다. 15년 이상 활동을 하면서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웬만큼 했다고 느꼈다. 보통 미술가들은 아트페어에 출품을 하는데 박성백은 주변에서 작업하는 후배·동료들과 의논하다가 2012년부터 아트페어와 함께 자신들의 작품을 디자인 상품으로 개발하여 디자인 페어에도 출품하기로 뜻을 모았다. 27명 남짓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그 작품이 담겨 있는 쿠션, 이불, 가방 등으로 만든 아트 상품을 판매하였는데 사오일 밖에 되지 않는 전시기간임에도 현장에서 5천만원 정도 매출이 생기고 추가 주문이 5천만원 정도 들어왔다. 이렇게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고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 중 17명이 출자를 하여 2015년,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공원 인근의 건물 1층과 2층을 건물의 가치를 콘텐츠가 보장해 주는 현실을 만들어 가겠다는 신념으로 건물주를 설득하여 보증금 없이 임대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카페와 음식점, 꽃집과 갤러리,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매장까지 갖추어진 이 곳을 조합원들이 각자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홍보하였다.


"10~20년 한 분야에서 같은 일을 해 온 17명이 각자 200명에서 300명 정도의 매니아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사함이 전시할 때라도 17명이 각자 알고 있는 고객들에게 팜플렛을 보내고 홍보를 하니까 한 번 전시할 때 보통 600명에서 700명이 오는거죠. 이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자기 고객이 이백 명이었는데 사백 명으로 늘어나는 사람도 있고 삼백 명이었는데 백 명을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는 경우도 생겼어요.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는데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거예요."


육개월 정도 지난 시점부터 1년에 걸쳐 잘되는 사람부터 한 명 한 명 다른 조합원 모르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더니 10명이 빠져 나갔다.


"그 일년 육개월 동안이... 제가 한 50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포콜라레 회원도 있었으니 뭐 사업회 안에서 말도 많았고, 사기꾼부터 시작해서... 포콜라레도 떠나고 싶었고, 이 지역도 떠나고 싶었어요. 모든 것들을 다 그만 두고 싶을 때...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말 없음)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대표를 맡고 있다 보니 제 이름으로 대출이니 뭐니 이런 것을 다 떠안게 되었죠. 어느날 부터는 함께 정한 규칙이고 정관이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고 나간 사람들은 자신의 출자금을 안돌려 준다고 난리가 나고... 결국 대출금은 조합원들이 다 갚아야 되는 상황이 되었어요. 조합을 나간 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대출금과 은행이자를 갚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대표로서 결정했던 것들이 진짜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를 위한 것이었고, 내 이기심이었다면... 뭐 그것까지도 다 드러나겠지... 진짜 이게 진실로... (말 멈춤)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고...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 본의 아니게 저희 조합의 모든 것들을 오픈해야 되는 상황도 생기고... 그런 일들이 오히려 다 도와준 것 같아요. 진실은 다 수면 위로... 언젠가는 진실만 남을 것이라는 믿음과 사람들로부터 가장 비참하게 버림받으신 그 분* 때문에 포콜라레와 지역을 떠날 수도 없었어요."

*포콜라레 운동의 목표는 "일치"이다. 모든 이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길은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태 27.46) 하고 부르짖던 순간의 '버림받은 예수'의 모범을 따라 우리 자신의 고통은 끌어 안는 것이다. 이처럼 부조리한 모든 상황을 사랑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속한 사회를 정화해서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다(Lubich, 2014, 81-96)

"그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출자금을 돌려 받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 사람 한 사람씩 돌아와서 용서를 청하고 다시 관계들이 만들어지고... 그런데 그때 또 새롭게 안거죠. 용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어요. 돌아온 사람들과 다시 관계회복이 돼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은 아닌 사람들대로 또 그냥 잘 지내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었던 것들은...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에, 다른 것들 때문은 아니고... 그리고 남아 있는 조합원들하고 우리 가족들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준 사람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에 있던 관계들 안에서 노력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있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박성백은 건물관리와 협동조합의 운영을 위해 주택으로 사용이 가능한 3층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하였고, 남은 조합원 6명과 함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하였다. 경상감영공원에 나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는 사람책 프로젝트, 100년이 더 된 원도심 골목의 낡고 비루한 작업실에서 한국전쟁 이후 수십년 동안 수제화를 만들어 온 장인 할아버지들과 함께 한 향촌 수제화골목 살리기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저희들이 사실은... 문화예술가들이 일상을 평범하게 살 수 있어야 작품 활동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협동조합을 시작한 거였어요. 그것조차 안되는 예술가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런데 동네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저희들이 굉장히 부자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거죠. 예술가들은 그래도 자신들이 선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바깥에는 자신이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아야 되고,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떨어져야 되고,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을 위한다는 처음의 미션이 좀 바뀌어서... 그런데 우리가 이윤을 창출해서 물질적으로 뭔가를 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저희들이 가장 첫 번째 미션으로 잡고 있는 거는 '관계'예요. 뭐 어려운 분들을 위해 김장도 담가서 나눠 드리고 하지만... 이벤트나 축제는 한번 하면 끝나는 거고... 모임이나 뭔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은 같이 밥 먹고, 차 마시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술도 마시면서 사람들의 어려움을 듣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어요."


문화창조놀이터 ETC는 2018년부터 골목문화와 경제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구 원도심 골목의 문화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우선 마을의 주민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세 차례의 마을 잔치를 열었다. 음악하는 분들을 초대하여 어린이와 부모를 위한 행사를 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막걸리 파티도 하면서 골목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이 곳은 1910년 대 적산가옥이 굉장히 많은 지역이예요. 그 분들 중에는 밀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우울증으로 자살하신 분도 생겼거든요. 이 지역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단편영화도 만들고 인문학하시는 분들과 연결해서 골목골목을 다니는 여행상품을 만들어 펀딩도 하였어요."


2019년 3월부터 골목 수제화 장인 할아버지들과 함께 수제화 아카데미를 운영하였다. 교육 공간은 구청에서 마련해 주었는데 300미터 정도 되는 수제화 골목에 가게는 70여 곳이 있었지만 오후 6시만 되면 거리가 어두워지곤 했다. 이 거리에서 밤 9시까지 수제화 아카데미가 문을 열자 차츰 가게들의 영업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어있던 가게에는 다른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난 문화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왔다. 디자인 회사와 공방, 로컬 상품을 만드는 창작자들이 들어오고 카페나 빵집도 생겼다.


"수제화를 하는 분들은 4, 50년 된 기술자들이지만 50년대 60년대 구두 디자인 형태로 계속 구두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6, 70대 고객은 있지만 3, 40대 고객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 분들을 위한 새로운 구두 디자인도 해 드리고 새로운 브랜드 상품도 만들게 되었어요."


지역 주민들의 관계형성을 토대로 골목에 활기를 불러오고 경제적 결속까지 이뤄 내는 문화창조놀이터 ETC의 활동은 중구청 만이 아니라 대구의 다른 구나 인근의 시·도에 알려지면서 다른 지자체들이 먼저 사업을 제안해 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테마여행 10선"은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서울과 제주도를 뺀 나머지 지역의 관광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문체부는 39개 시도를 선정하여 10개의 권역으로 나누었다. 문화창조놀이터 ETC는 제 3권역인 대구·안동·영주·문경 4개 도시의 "선비이야기 여행" 사업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시행하고 있다.


"더 이상 지역의 자연과 자원을 보고만 지나가는 단체 관광으로는 지역 관광의 지속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지역, 사람, 예술, 문화콘텐츠 중심의 소규모 관광이여야 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기획한 것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공연하는 사람, 문인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여행객들에게 직접 안내를 하면서 세 시간 정도 함께 하는 여행 상품들이예요. 예를 들면 건축가가 지역에 있는 근대 건축에 대해서 한 30분 정도 강의를 하고 직접 그 건축물을 찾아가 함께 둘러 보면서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집에 들어가서 50년대 주택 구조를 설명해 주니까 전국에서 건축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이게 코로나 상황하고도 맞아 떨어졌고... 또 공연자들은 그동안 자기네들이 공연을 다니고 외부의 사람을 모아서 공연을 했었는데 코로나 19가 덮친 후 사람을 모을 수가 없고 불러 주는데도 없으니 그냥 연습실에서 연습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들이 거꾸로 연습장을 방문하는 거죠. 근대 음악 강의를 50분 듣고 난 후, 그룹 멤버들이 직접 연주하는 근대 음악 공연을 한 시간 감상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한 시간 정도는 같이 이야기도 나누는 세 시간짜리 여행 상품으로 만들어서 하니까... 공연이 여행 상품이 돼 가지고... 문체부에서도 자기들이 찾으려고 했던 상품들이 이런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저희들은 문화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장에서 자기가 해 왔던 그림 그리고 해 왔던 음악을 연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거고..."


코로나 이후 관광업계가 사실상 거의 문을 닫거나 폐업위기에 놓여 있지만 문화창조놀이터 ETC는 2018년부터 해마다 매출이 2배 내지 3배씩 늘었다. 대규모 단체관광이 지역의 자원과 문화적 시설을 구경하고 지나가는 여행상품이었던 것에 비해 문화창조놀이터 ETC가 기획한 소규모 관광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여행의 질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았다. 지역에 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소규모 관광에 대한 문화창조놀이터 ETC의 계획서는 코로나 이전에 문체부에 제출되었는데 코로나 창궐 이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관광의 생태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고통-불안, 우울, 섭식장애, 대인기피 등을 겪고 있는 팬데믹 세대(Pandemic generation)와 평범한 일상과 학습을 zoom으로 대체당한 청소년과 청년(Zoomer generation)들을 위로하기 위한 그림 수필집 '백씬 북(100 Scene book)'을 출간하였다. 또한 이들의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충전, 치유, 회복 여행 상품인 '트래블 테라피' 여행상품을 만들어 동시대의 가장 큰 아픔과 고통의 사건으로 기억 될 팬데믹 세대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하는 지역 여행상품을 통해 코로나 이후의 관계성 회복을 위한 사업들을 중비 중이다.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문화창조놀이터 ETC가 참여하고 있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은 지역의 한 사회적기업 여행사와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다. 현재 문화창조놀이터 ETC의 직원 6명 중 5명이 협력업체에서 건너온 직원이다. 그들이 더 이상 그 곳에서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문화창조놀이터 ETC가 전직을 받아 주었고, 문화 창조놀이터 ETC에서 더 이상 근무하기 어려운 입장이 된 한 명은 그 협력업체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EoC 기업을 한다는 것은 소명이 있어야 되는 거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최근 들어서 실감이 나는 거예요. 코로나 시기에 여행사들이 다 문을 닫는데 저희들만 한 10배 정도 성장한 그런 상황이... 저희들이 예상하고 준비한 것들은 절대로 아니거든요. 그냥 하루하루 만나는 직원들 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남는 것은 돈이 아니라 관계만 남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관계들이 이윤창출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뭐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서 로비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저희들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루하루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 말고는 따로 한 게 정말로 없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 저희들한테는 기적이예요. 그러고 나니 이게 EoC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기적처럼 살았다는 얘기들이 새롭게 실감이 나는거죠. 얼마나 이윤 창출을 많이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돕고 이거는 두 번째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한 방향으로 같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발견해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 올해부터는 대출도 갚고, 우리 주변에서부터 가난한 사람이 없는 직장, 공동체, 마을, 지역을 만들어 가는 일들을 직원들과 함께 해가고자 해요."


"이것이 관계의 재화가 만들어내는 큰 힘이 아닌가... 눈에 안 보이는 이런 가치들을 수치로 환산해서 '너희가 하는 이 역할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왜 이런 거를 수치화시켜서 얘기해주는 연구기관이 없을까요?'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수치화 그리고 그거를 화폐로 환산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신용가치를 인정해서 대출의 근거를 삼는다던가 하면 기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관계에 좀더 유념하지 않을까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돈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으니...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이루어 가야 할 일들이 아직 너무 많아요."


출처: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이탈리아 시민경제 사상과 한국 친교경제 EoC 기업 사례 연구> 사회학과 강영선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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