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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위한 도구로서의 네트워크(프라잡 Fra Job과 안드레아 비스콘티 Andrea Visconti -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와의 대화)


사회자 : 프라잡(Fra Job)이 뭔지 설명해 주시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잔 도나토(Giandonato Salvia) : 프라잡(Fra Job, 일자리 형제)은 ‘투쿰(Tucum)’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저는 조합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물 앞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우물은 지금의 SNS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쿰은 사회적 기업인 앱아쿠티스(A.P.P. Acutis)의 프로젝트입니다. 디지털 사도로 복자 품에 오른 카를로 아쿠티스 Carlo Acutis (15세에 숨진 '신의 인플루언서')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제가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이 길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저와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형제들’입니다. 그들과 교제하면서 저는 경제와 금융, 독과점에 대해 알게 됐는데 자마니(Stefano Zamagni) 교수님 말씀대로 현재 대학교에서 경제에 대해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훌륭한 교수님을 만난 덕분에 금융의 인간적인 면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복음을 경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는 비인간적이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토피아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카를로 아쿠티스가 했듯이 노숙자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께서 하신 것처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투쿰’이라는 앱을 사용하면 사람들에게 기부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적선하는 대신에요. 우리와 함께 하는 여러 단체들에게 기부할 수 있습니다. 카리타스와도 같이 했었는데 잘 되지 않아서 디지털 쪽으로 더 파고들게 되었어요. 저는 대학 강단에서 가르칠 것인지 아니면 길거리로 나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며 제 길을 찾았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비아 루치스(빛의 길)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2019년에 어떤 경제학자가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냐’고 말했어요. 저는 길거리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멋진 사람들과 만났고, 그들 편에 서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구호 단체에서 도움을 받고 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이 구호 단체들이 하는 일에 정말 감사해야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 바랍니다.


존엄성은 음식 꾸러미를 받는 걸로 채워질 수 없죠. 제가 직접 노숙인처럼 센터에서 밥도 먹고 길거리에서 구걸도 해보았어요. 그건 다시는 안할 겁니다. 적선 받는 것은 가장 심한 형벌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울고 싶어집니다. 저에게 너무나 불쾌한 일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구걸의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목을 받지 않으려고 베니스의 후진 골목에 자리 잡았는데도 놀랍게도 한 시간 반 만에 13유로나 받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적선하는 사람은 자기 양심을 만족시키고, 마피아는 이윤을 취하는 것입니다. 투쿰 앱을 통하면 즉시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인간으로서 나아질 수 있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과 일자리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AIPEC(EoC 이탈리아 협회)과 연계하여 프라잡(Fra Job, 일자리 형제)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프라잡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태양을 형제라 부르고, 달을 자매라 부른 데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기업에게 채용 인터뷰의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채용을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인터뷰를 보는 사람도 자기 몫을 해야 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프라잡은 기업들 사이에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플랫폼입니다.


AIPEC은 큰 선물입니다. 이 협업은 실패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길에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더 나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모하메드를 AIPEC의 한 기업에 소개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후 채용됐지만 단 하루만 출근하고 사라졌습니다. 1년 후 저는 길에서 노숙하고 있는 모하메드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다시 기업에 소개했고 이틀 후에 그는 다시 일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자신도 놀랐어요. 세상에 정말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AIPEC 분들이지요. 이분들에게 저는 정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제가 또 길에서 만난 잔 카를로는 여러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잔은 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고용한 기업이 그가 지닌 정신적인 문제까지 떠안게 되면서 엉망이 됐어요. 그는 마약중독 등 여러 문제가 있었고 한달 정도 지난 후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처가 너무 깊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노숙하다가 바로 다시 일을 시작하기 어려워요. 좋은 사람들이 이런 상처를 치유하도록 도움을 주고 그 후에 취업을 도울 수도 있을 겁니다. 프라잡과 AIPEC이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꿈을 이루도록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앱을 다운로드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사회자 : 안드레아 비스콘티(Andrea Visconti) 씨는 핸드폰을 들고 무대에 올라오셨는데요. 제가 사이트를 좀 둘러봤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아빠’이기 때문이었죠?


안드레아: 맞아요. 그게 결정적인 이유였죠. 제가 실패한 스토리를 말씀드리려고 해요.


사회자: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네요(웃음).


안드레아 : 저는 스타트업을 시작한 기업가였어요. 몇 년 전 스타트업 기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25만 유로(약 3억원)를 상금으로 받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너무 긴 이야기여서 다음 번에 다시 초대해 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상금들도 일부 받았지만 자금 부족 문제가 심화되면서 결국 사업을 접었어요. 저는 그 사이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지금은 자녀가 세 명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필립보, 리카르도가 두 살, 세 살 반이었어요. 저는 제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면서 제 잘못이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울컥한다)


사회자 : 자, 힘든 시간을 보낸 아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시다!


안드레아 : 아이들은 저를 실패한 기업가로 보지 않았어요. 그저 안드레아 비스콘티로 대했죠. 제가 스스로 발견할 수 없었던 제 모습을 아이들이 볼 수 있게 해준 것이죠.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된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아빠의 사업은 실패했지만 아빠라는 사람은 실패가 아니라는 걸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궁리했죠.


매일 밤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는데, 동화식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제 사업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에 대해 답변도 드릴 겸해서 동화식으로 만든 그 이야기들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SNS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곧바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TV에 초대를 받았고 TED에 나가서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 신문에도 실렸죠. 여러 기업들이 제안을 해왔어요. 동영상에서 실패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기업의 스토리와 가치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요.


제 안에 있는 기업가 기질이 발동했어요. 이 길을 한 번 따라가 보자고 생각했어요. 여러 차례 멈춤과 위기가 있었습니다만, 조금씩 기업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을 위한 소셜 미디어 전략을 짜고 소셜 미디어용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으로 말입니다.


우리 회사는 인플루언서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아주 훌륭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젊은이들이죠. 우리는 이들과 여러가지 챌린지와 액티비티 콘텐츠를 만듭니다.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어서 기업들이 지닌 가치를 알리는 것입니다. 이 챌린지와 액티비티에 수천만 개의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최근 몇 년간 제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루이지노 브루니 : 한 사람이 일한다는 것은 단순한 상황이 아닙니다. 상품을 파는 것과 완전히 다르죠. 벌 주는 것처럼 일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노동은 서로간의 만남, 능력과 인정, 존중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이미 실패한 후 40년간 길에서 구걸하며 노숙하거나 정부에서 매달 400유로(약 57만원)씩 받으며 소파에 누워만 지내는 것은 이미 큰 상처입니다.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인정을 받고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함부로 대하지 않는 진정한 만남이 필요합니다.


잔 도나토가 직접 구걸을 해봤다구요? 정말 대단합니다. 빈곤은 직접 경험해야 비로소 알게 된다고 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유누스(Muhammad Yunus)제니퍼 네델스키(Jennifer Nedelsky)는 빈곤 문제를 다루는 정치인들의 문제가 이 분야를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고 합니다. 빈곤을 모르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빈곤에 대한 진정한 경험과 통찰이 없는 것입니다. 빈곤의 진정한 가치, 즉 거의 가진 것 없이 살아갈 줄 아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능력과 부를 모릅니다. 오성급 호텔, 고급 승용차, 골프장에서는 빈곤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하면서 시작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안드레아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가 너무 아름다워요. 제가 뭘 더 덧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게 쉽지 않죠. 어려운 시기에 이겨내게 해준 힘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경제 팀에서 곧 연락이 갈 거예요. 우리도 소셜 미디어 전략을 배워야 하거든요. 간단하지 않은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당연히 비용은 지불할 것이구요(웃음).


저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강도들을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아무 대가 없이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여관을 떠나면서 그 사람을 돌봐 달라며 여관 주인에게는 비용을 지불합니다. 여관 주인에게 자기처럼 무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가 지불한 두 데나리온은 유다의 은돈 서른 닢과 맞먹는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유다의 서른 닢 이야기만 있었다면 경제학자들은 복음에서 배울 게 없었을 겁니다. 복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애덕 행위인 여관 주인의 노동을 인정하고 그 비용을 지불한 것이죠. 그리고 그는 돌아오는 길에 나머지 비용까지 지불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제가 이것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기업가들에게는 이 장면이 비유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간의 믿음이죠. 그 시대에는 여관주인이 일반적으로 가장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인이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고 장례비를 청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관주인도 사마리아인을 믿었습니다. 치료비가 더 많이 들어갈 경우 사마리아인이 돌아올 때 갚아 줄 것이라고 믿은 거지요. 신약 성경에 나오는 비유 중 가장 의미 있게 경제적인 면을 다루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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