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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쏘잉협동조합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미혼모들에게 재봉 교육을 하고, 수공예품 판매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이다. 대표 김경애는 2013년 10월, 시설의 미혼모들에게 재봉을 가르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개인적인 상황을 이야기를 하게 되고, 미혼모들이 처한 상황을 차츰 깊이 알게 되었다.


"이 분들은 거의 원가정이 없거나, 파괴되었거나, 조손가정이거나... 제대로 된 원가정이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요. 학교 중퇴자들이 되게 많아요. 중학교 중퇴자들이 많고 고등학교 졸업자들은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까 이 친구들이 여기를 퇴소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게 걱정되기 시작했던거죠."


동네에는 취미로 재봉을 하는 주부들이 몇 명 있었다. 김경애와 이들은 미혼모에게 전문적인 재봉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제품의 판로를 찾아주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하여 아파트 상가의 한 학원 공간을 임대하기로 하였다. 시설에 가서 교육을 하기에는 여건이 어려웠고, 학원은 방과 후에 강의를 하였으므로 오전만 빌리는 것이 가능하였다.


"처음에 수강생 한 명으로 수업을 시작했을 때는 제가 쓰던 재봉틀을 들고 가서 수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수강생이 여덟 명까지 늘어난 거예요. 저희 멤버가 가지고 있는 걸 다 해봤자 재봉틀 5대인데... 실기 수업은 눈으로 보고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봉틀이 없으니까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렵고, 엄마들한테 재봉틀을 빌려주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요."


그 때 누군가 마을기업이 되면 재봉틀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사실 마을기업이 뭔지도 모르고... 저희가 어떤 구조를 갖춰야 되는지도 잘 모르지만 서류를 냈는데 통과가 된 거예요. 그 해 행정안전부 전국 평가에서 1등을 했다 하시더라구요. 아마 동네에서 엄마들이 모여서 미혼모 돕기라는 미션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아요."


아가쏘잉협동조합은 2015년 7월 1일 마을기업으로 법인등기를 마치고 출범을 하였다. 5천만원의 지원금으로 재봉틀과 필요한 비품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일정 비율의 자부담이 있어야 했고, 매월 운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조합원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과 수강생들과의 갈등이 중첩되었다.


"처음에는 엄마들이 경제적인 게 해결이 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들은 절실하지 않았던 거죠. 왜 절실하지 않을까? 아가쏘잉의 출발은 경제적 자립을 돕는 마을 공동체였는데 차츰 정서적·경제적 자립을 돕는 마을 공동체로 바뀌어 갔어요. 봉재 제조업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너무 복합적인 일들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처음 시설에서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미혼모들을 돕고 싶다', '미혼모들의 자립을 정말 도와주고 싶다' 뭐 이런 말들을 되게 많아 했는데... 어느 순간 이 분들을 밑에 내려놓고 제가 저 꼭대기 층에서... 마치 내가 뭔가 가진 게 있어서 나눠줄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희생한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이 너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거예요. 실제로 저는 이 분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보지는 않았던 거죠"


매월 지급해야 하는 급여와 고정비용은 있는데 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수익은 나지 않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더하여 조합원 사이의 갈등은 고조되고 스스로 자괴감도 심해졌다.


"처음 기업을 하면서 한 5년 정도는 너무 기쁘게 살았던 거 같애. 오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너무 힘들고 지치고 이런 순간이 됐는데... 사실 누구한테 있는 그대로 표현할 만한 사람이나 공감해 줄 만한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런 시간들이 되게 많이 지나다 보니까..."


미혼모들은 대부분 수급자이거나 외부 후원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했다. 게다가 미혼모 시설은 한 명의 미혼모가 새로 입소할 때 마다 미혼모 한 명당 이백 몇십만원, 아이와 함께라면 삼백만원이 좀 안되는 운영비가 지원되는 구조였다. 또한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기부금도 있었기 때문에 미혼모들 중에는 기관이 자신들을 이용해 후원금을 모아놓고 정작 자신들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 김경애는 협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보면서 미혼모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누구 한 명도 뿌리를 못 내리더라고요. 이웃도 만들지 못하고, 친구도 만들지 못하고 심지어는 둘이 너무 절친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구청에 고발한 사건이 생기고 그런데 다른 한 친구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이 친구들이 단 한 명과도 신뢰 관계를 맺지 못한 이유가 처음엔 단순하게 어릴 때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원가정이 첫 번때 요인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 친구들이 지금 사회에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게 문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었어요."


"(나와) 미혼모들의 관계가 견인 역할을 한다든지 이끌어 준다든지 이런 개념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그냥 같이 걸어주는 거, 조금 더디더라도 이 사람들이 쉬고 있으면 같이 멈출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고, 그런 이웃이 필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김경애는 미혼모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에는 재정 지원을 하든 수업을 하든 미혼모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때부터 일반인 5명, 미혼모 5명을 그룹으로 수업을 하고 일대 일 만남을 시도했다.


"저는 사람들은 만나면 맺어지는 줄 알았어요. 미혼모들끼리는 서로 상처가 있으니까 관계 맺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정서적인 여유가 있거나 삶이 안정적인 엄마들하고 만나면 관계가 맺어지는 줄 알고 저희 공방에서 그냥 같이 무조건 만나게 한 거예요."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일반인들은 미혼모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을 돕겠다고 한다"면서 김경애 대표를 비난하였고, 미혼모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2019년 1월, 김경애는 아가쏘잉협동조합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신영철에게 털어 놓았다.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힘들고, 이 일이 미혼모들에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받은 질문은 몇 명 자립시켰냐, 얼마나 경제적인 도움을 줬느냐 이런 것들이 되게 많은데 사실은 지금까지... 9년 동안, 정말 제대로 자립을 시킨 사람이 두 명이거든요. 사람들은 그러는 거예요. '미혼모들 팔아서 돈 버는 거 아니냐' 부터 시작해 가지고 뭐... 미혼모들조차도 구청에 신고하고 노동청에 신고하고 이런 것도 많이 겪고..."


신영철은 김경애의 고민을 듣고 아가쏘잉협동조합이 추구하는 방향이 지닌 가치를 인정하면서 도움을 약속하고 경영방식에 대한 조언을 하였다. 제품에 대한 평가도 좋고, 판매를 위해 전국적 행사에 참여하면서 열심히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합리적 운영을 위한 변화 또한 필요했다. 신영철은 아가쏘잉협동조합에 합류하여 운영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제가 혼자 소리를 내면 그게 메아리처럼 그냥 공허하게 흩어지고 마는데 '맞다'라고 해주는 누군가가 생기니까 조직 내부에 힘이 생기더라구요. 코로나 시기 때 다들 문을 닫을 때 저희는 거의 20시간씩 일을 돌렸거든요. 그래서 만들어서 보내고 필요한 물품도 구입해서 보내고 어느 시간이 지나다가는 이제 구호 물품들이 막 들어와서 그걸 다시 또 분류해서 보내기도 하고 그런 중간 다리 역할을 좀 하게 됐던 거죠. 신영철 선생님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늘 같이 하시지만 그보다 아가쏘잉이 (초심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끊임없이 해주시는 거 같아요."


아가쏘잉협동조합은 그동안 외부지원을 받지 않았으나 신영철의 제안으로 영리와 비영리를 구분하기로 하였다. 미혼모들의 필요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다양한 지원활동들이 재무제표 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영철이 합류한 후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9년 처음으로 매출액이 1억을 넘겼고, 2020년 2억 6천을 넘겼으며 2021년의 목표는 4억이다. 경영합리화와 함께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한 엄마가 찾아왔거든요. 이 엄마가 작년에 왔다가 상품권 수령 문제 때문에 막 욕을 하고 가셨어요. 이 분이 발달 장애 센터도 가 보고... 이 분은 발달 장애인이셔요. 미혼모 협회도 가보고 다 찾아본 거죠. 근데 이 엄마가 원하는 지원책이 없는 거예요. 이 분이 올 때는 되게 쭈뼛쭈뼛하고 오셨어요. 왜냐면 자기가 했던 행동이 있어서..."


김경애는 먼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마음을 풀어주고, 빵을 만들고 싶다는 상담자에게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마을기업에서 빵만드는 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을기업으로 상담자를 보내기에 앞서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겠어요"라고 의사표현을 하는 법,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법을 익히고 난 후 가는 것이 어떠냐고 권하였다. 아가쏘잉협동조합은 이 미혼모에게 일정액의 교육훈련비를 주면서 근무시간에 함께 하도록 하였다. 이런 식으로 미혼모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변의 사람이 청년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립청년 자립경험 프로젝트"를 김경애에게 알려 주었다. 현재 아가쏘잉협동조합에는 위의 발달장애 미혼모를 포함하여 두 다리가 의족인 청년, 알콜의존증인 청년 등 5명이 일경험을 하고 있다.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도나콜뱅크(Dona Call Bank)라는 소액대출도 시도하고 있다.


"엄마들을 만나다 보니까 사실은 대부분이 다 신용불량자였어요. 카드 대출 말고도 작업 대출이나 이런 정말 음지에서 일어나는 대출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페이퍼로 만들어서 이 분의 신분을 세탁을 하고 돈을 받고 뭐 신분증 위조도 하고 이래서 대출이 실행이 되고 나면 굉장히 많은 수수료를 가져가고 결국은 이 당사자 앞에는 빚만 남게 되는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까... 이 분들이 정상적인 거래도 경험해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현실적으로 한 군데도 없는 거죠. 예언적 경제에 참가했을 때 필리핀의 카바얀 은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자본이 좀 모이면 해야지 생각했어요. 이 안에서는 무상 지원도 있지만 대출을 경험해 보는거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신용을 가지고 하는 거라서 금액은 크지 않아요. 지난 달에는 택배비가 없다면서 급하게 빌려 달라는 친구가 있어서 18,000원을 빌려주고 수급비가 나왔을 때 돌려 받았던 경험, 수급비 나오기 전에... 병원비가 없어서 만 원을 빌려 갔다가 갚은 친구... 지금은 백 프로 상환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초기에 대구가 굉장히 심각했잖아요. 도시가 거의 폐쇄됐었어요. 길거리에 사람도 아무도 안 다니고 어린이집은 다 휴원을 하고... 시설에 있는 엄마들은 외출을 안 하니까 그래도 생계적으로 덜 어려운데 저희가 지원하는 엄마는 재가(在家) 미혼모들이고... 혼자 원룸을 얻어 있는 엄마들이 많다 보니까 거의 월세거든요. 그 때 신영철 선생님의 동기 분들이 300만원을 모아 주셨어요. 그 돈이 종자돈이 돼서 그러면 도나뱅크를 시작해보자 진행이 됐고... 당시에 출산한 분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1인실 밖에 사용할 수 없어 병원비가 많이 나온 분에게 124만원, 18가정에 15만원씩 275만원을 지원했어요."


이 외에도 심장병을 앓는 아기의 치료비를 지원하였으며 현재 잔액은 84만원이다. 지금은 유기농 과일과 과일즙을 판매 수익금으로 자금을 조성하고 있다. 2020년 2월부터 4월에 걸쳐 토로나 19 확진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급증하면서 대구지역이 '도시 정지' 상태가 되자, 아가쏘잉협동조합은 시설 밖 미혼모는 물론 독거노인, 노숙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까지 관심의 폭을 넓혔다. 독거노인에게는 반찬과 생활용품, 시설 밖 미혼모 가정에는 식자재와 생활물품을 지원하였고, 국내의 시설과 단체는 물론 필리핀, 일본, 독일에 마스크를 제작하여 보냈다. 아가쏘잉은 미혼모들의 아기를 몇 시간, 혹은 며칠동안 돌봐 주는 "도나 돌봄(Dona Care)"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전까지는 사실은 제가 혼자 아기를 봤어요. 아주 어린 신생아는 제가 봐야 하지만 서 너살, 너 댓살 된 친구들은 우리 애들이 거의 다 봐줬거든요. '도나돌봄'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한 미혼모가 자해를 해서 제가 병원에서 그 엄마를 돌보면서 그 엄마의 아기도 같이 챙겨야 했는데 이 아기가 신생아여서... 여기저기 부탁을 했더니 한 분이 아기를 봐 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후에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아이를 봐 주겠다고 하셨어요."


"저랑 그 엄마가 거의 교대로 아기를 보다가 나중에 또 한 분이 늘어난 계기는... 제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기를 볼 수 없었고, 그 엄마도 사정이 안되어서... 한의원에서 신영철 선생님과 걱정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자분이 '내가 한번 해볼께요'라고 나섰어요. 하루 동안 아기를 돌본 후 이 분이 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 왔어요. 이 분은 학생운동을 오래 했고, 노동자 인권을 위한 일도 하면서 살아 왔는데 아기를 보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대요."


봉사자는 이런 식으로 늘어나서 7~8명이 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독신인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보게 됐거든요. 그 분이 저한테 카톡을 이만큼 보내셨더라구요. 저도 그 카톡보면서 진짜 감동을 받았어요. 사회적 가족, 사회적 탯줄이라는 걸 그냥 말로 들었을 때와 아기 한 명과 1박 2일, 스물네 시간을 함께 하면서 느끼는 감회들은 굉장히 다른 거 같아요. 우리가 사회적 신뢰를 많이 얘기하지만 사실 쌓아가기는 진짜 힘들잖아요. 근데 어쩌면 이 아기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도 모르게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처음에는 아기를 맡기려는 미혼모와 봉사자를 직접 연결하였는데 곧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기를 맡기려는 미혼모가 아가쏘잉협동조합에 신청서와 확인서를 제출한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사람들 중에는 미혼모들이 예상하던 모습과 다른 것에 실망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십여 명은 "어깨동무"라는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어깨동무"는 말 그대로 한쪽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들... 아이가 울거나 보채면 엄마들이 딱 안아서 어깨에서 토닥토닥하게 되잖아요. 이 모든 이름이 사실은 그냥 저는... 순간순간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그냥 자꾸 만들어진 거라서... 동무는 나이나 신분 뭐 학력에 전혀 상관이 없잖아요. 이 어깨동무 선생님들은 저희 고객이나 수강생 이런 분들이 많아요. 저희가 영리도 아니고 비영리도 아닌 애매모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나도 자원봉사 할께" 이렇게 해서 오시게 된 분들이 대다수 이기도 하고..."


"엄마라면 뭔가 희생적이고 아이를 위해서 헌신하고 뭐 전력투구해서 일을 하고 이게 아니라, 게으른 노숙자들을 보는 듯한... '저거는 정말 여성 망신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페미니스트 분들은 우리 때문에 미혼모들 버릇이 더 나빠진다 이런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 아가쏘잉은 기업적인 성격을 가져야지 지속가능하지 않아? 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하시고..."


"연말 되거나 이럴 때는 아이들 가정으로 성탄 선물을 제가 장난감을 보내거든요. 그것도 취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왜냐하면 엄마다 아이하고 대화를 해서 각자 받고 싶은 선물을 캡처해서 보내요 저희한테... 그럼 저희는 그걸 일일이 다 취합해서 구입해요. 그거를 다시 각 가정에 맞춰서 포장... 뭐 크기도 다르고 하니까 그런 일들을 어깨동무의 선생님들이 계속 같이 하고 있는 거예요."


2017년, 미혼모 시설에서 금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야반도주를 했던 한 미혼모가 부산에서 노숙을 하다가 김경애에게 전화로 돈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규정상 현금을 줄 수는 없다면서 대안을 제시하던 김경애는 그 미혼모에게 다시 대구로 오도록 권하였다. 그러나 그 미혼모가 거처할 곳을 마련해 줄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 일을 계기로 행정 지원 대상이 아닌 미혼모들을 위한 공간을 구상하게 되었다. 먼저 5천만원 정도로 방을 한 칸 마련하고 싶었던 "손뼉 프로젝트"는 760만원 밖에 모금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21년 "지역자산화지원사업"에 지원하여 선정이 되었지만 신용보증기금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자금이 30% 있어야 했다. 신영철은 모금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뭐 예를 들어서 성가소비녀회라고 가난한 사람들과 사는 수녀원에서 2,600만 원을 지원해 주시고... 30년 된 수녀님들 봉급이 칠만 원인가 받는다 하대요? 그거를 모아서 인천관구에서 500만 원, 서울 총원에서 500만 원, 나머지 재속회에서 1,600만 원 해서 2,600만원을 모아주었어요. 김대표가 많이 울더라구요. 가난한 사람들, 여유가 없는 힘든 사람들이 3억 모으는데 뭐 엄청난 역할을 해주셨어요. 이런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우리 아가쏘잉협동조합이 반듯하게 걸어 왔다는 것을 반증해 준 것이 아닐까 아니면 김 대표님의 바른 마음가짐이나 사회에 대한 따뜻함이 사람들한테 설득력이 좀 있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사람들은 다 못 모을 줄 알았다는 거예요. 우리가 34,474만 원인가? 뭐 110% 넘게 모았으니까... 저도 깜짝 놀랐어요. 김 대표도 많이 놀라고..."


아가쏘잉협동조합에서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 신영철이 생각하는 아가쏘잉협동조합의 가치는 무엇인가?


"가장 큰 거는... 아가쏘잉협동조합은 계속 적자죠. 김대표가 가지는 미혼모에 대한 생각들이... 대부분 사람들은 자립은 몇 명시켰냐 니들이 그렇게 힘들게 노력을 했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 이런 데 초점이 가 있어요... 그런데 김 대표하고 저하고 같이 사회적 모성애라는 개념을 도출해내면서... 같이 있어주는 거죠. 힘들고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다가 아니라... 사람이 옆에 있어 주지 않는 시절을 살아오신 분에게... 미혼모들한테 '이렇게 살면 안 돼'가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 주는 게 필요한거죠. 이게 김대표가 가진 관점이고 아가쏘잉이 지향했던 관점이 아닌가... 가장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기업이 아닌가 라고..."


출처: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이탈리아 시민경제 사상과 한국 친교경제 EoC 기업 사례 연구> 사회학과 강영선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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