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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렌지 / 신세기유통(주)



주신경의 남편인 최종수는 1989년 서울과 수도권 동부의 수퍼마켓, 마트에 P&G 제품을 공급하는 대리점인 세기유통을 설립한 후, 2003년 존슨앤존슨이 한국 백화점에 진입할 때에 백화점 유통(신세기유통)을 시작하였고, 2007년 한국 알콘의 옵티프리 온라인벤더가 되어 온라인유통(오렌지)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였다. 각 사업부의 규모가 커지면서 2011년 법인을 분리하게 되었을 때 최종수가 주신경에게 경영에 참여할 것을 권하여 주신경은 주주이자 이사, 부사장으로 신세기유통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주신경은 2017년부터는 온라인유통사인 (주)오렌지의 대표직을 병행하게 되었다.

주신경은 가장 먼저 환경 개선과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했다. 화장실의 수건을 직접 세탁하고, 종이컵을 없애고 다회용 컵을 비치하였다. 신세기유통은 제조사나 수입사의 제품을 백화점에 공급하는 벤더인데, 매장마다 제품의 판매를 위한 여직원들이 파견된다. 유통업계에서는 매장 직원들을 용역회사가 관리하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효율이 떨어지면 바로 퇴사하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신세기유통은 130여 명의 매장 여직원들을 직접 고용하여 교육하며 복리후생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또한 매출이 떨어져도 여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최대한 유지하면서 매출을 올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한다. 유통업계에서 매장 여직원은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것이 관행인데 자신도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는 여직원도 있었다. 주신경은 사무실 직원과의 관계 형성은 물론 각 백화점을 직접 다니면서 매장 여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살폈고 고충을 듣고 때로는 주말이나 밤늦게까지 행사매대를 함께 차리곤 했다.


"(백화점에서) 일주일 행사를 하게 되면 물건을 가득 싣고 가서 백화점 폐점 후에 행사 매대를 차려요. 그 때는 판매를 담당하는 여직원도 같이 일을 하고 배송을 담당하는 남자 직원도 하고... 그렇게 해도 밤 열두시가 넘어 끝날 때도 있고 때로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 끝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작업할 때 저도 같이 하는거죠. 처음에는 '아이고, 왜 부사장님이 이런 데 왜 오시나' 그러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일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고, 문제점과 개선할 수 있는 뭔가를 파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가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같이 여러 시간을 같이 일하다 보니까 뭐 농담도 하고 이런 저런 있었던 일을 이야기도 하고 불평도 하면서..."


보통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본사 사무실 직원들보다 열등하다는 느낌을 갖곤 하는데, 주신경은 소비자들과 접점에 있는 매장 직원들이 회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하였다. 그와 같은 노력 중 하나로 직원의 수가 너무 많아지기 전까지 명절이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글씨로 쓴 카드와 작은 선물을 주곤 하였는데, 직원들은 선물보다 카드에 대해 더 고마워하였다. 또한 개별면담을 통해 업무상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경청하고 개인적인 상황들까지 알려고 애쓰면서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관계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2019년 회사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백화점유통사인 신세기유통에 큰 위기가 찾아왔을 때 주신경은 남편인 최종수에게 이 위기를 기업운영의 의미에 대해 함께 깊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도록 제안했고, 이때 최종수는 세 회사를 통해 EoC 정신을 실천하는데 합의하게 되었다. 30주년 행사 영상으로 전 직원들과 많은 거래처 내빈들에게 EoC 정신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세 회사에서 매월 소액의 EoC 기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대표이자 남편인 최종수와 합의하였고, 세 회사 임원들의 동의도 얻게 되었다.

(주)오렌지의 영업직원들이 매출 신장을 위해 second ID를 제안하면서 "거의 모든 온라인 벤더들이 second ID를 가지고 있으며 MD들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어떤 회사들은 여러 개의 ID를 갖고 있다"고 했을 때, 주신경은 아무리 많은 업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더라도 부당한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고, EoC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을 직원들에게 설득하였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던 초기 그때, 완전히 마스크가 품귀였잖아요. 오렌지는 마스크가 없어서 팔지 못했어요. 6월 초, 날이 더워지면서 KF94 마스크를 쓰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할 때 예전에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가 도와준 일이 있는 어느 거래 업체 대표님이 여름용 의약외품 마스크 공장을 소개해 주어서 업계에서 가장 일찍 대량 계약을 하게 되었어요. 그 무렵 이태석 재단의 구수환 이사장님의 페이스북에서 남수단은 의료진들초자 마스크 없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스크 3만장을 기부하기로 하였는데 이 마스크는 해외반출이 금지되어 정부의 특별허가를 받아야 했어요. 재단의 직원이 한 명 뿐이고 당시 개봉을 앞두고 있던 영화홍보 업무로 복잡한 허가신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가 허가신청까지 직접 하였어요. 새로 여름용 마스크 기계를 들여온 이 공장에서 수급상황이 어떨지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가장 먼저 기부를 위한 마스크 선적날짜에 맞퉈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 공장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겨서 우리가 계약했던 날짜에 마스크를 받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뭐 사방에서 난리가 났죠. 백화점도, 온라인도, 그렇고... 마지막에는 오렌지의 거래처인 온라인 사이트에 물건을 공급하든가 배의 선적일자를 맞추든가 둘 중 하나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무엇이 옳았는지 지금도 저는 몰라요. 다만 이번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떠나고 나면 1년 후에나 마스크를 보낼 수 있었기에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회사의 신뢰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부하기로 한 마스크를 먼저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온라인 비즈니스는 특히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마치 우리 회사가 큰 불이익을 당할 것 같고 무엇보다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이... 정말 어려웠죠. 다른 회사에 주기 위해서 거래처와의 약속을 어긴 건 아니지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공장의 기계가 고장났기 때문에... 설명하고 사과하고 어떤 패널티도 달게 받을 각오를 했는데 전후 사정을 들은 거래처에서 우리에게 패널티를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고 있고요"


(주)오렌지의 물류센터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찾다가 마석 가구단지와 구리시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공회와 천주교 단체를 알게 되어 여러 차례에 걸쳐 물품 기부를 했다. 대구의 미혼모들 자립을 돕는 아가쏘잉협동조합이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고, 봉제 생산품을 (주)오렌지에서 판매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고, 회사에서 취급하는 생활용품을 기부하기도 했다. 탈북청년단체와 SOS 어린이마을, 서천 어메니티복지마을, 대전의 복지시설, 제주의 복지시설에도 물품을 기부하였으며, 탈가정 청소년들을 위한 그룹홈과 쉼터출신 청소년들을 위해 매월 생활용품을 기부하고 있다. EoC 국제위원회의 대표적인 학자인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회사에서 그 책을 사서 필요한 분들에게 보내드리도록 번역자에게 책을 선물하였고, EoC 인큐베이팅(incubating)의 일환으로 새싹기업 중 하나인 샘물터연구소에 유료 컨설팅을 의뢰하는 외에도 월 일정금액을 후원하고 있으며, EoC에 속한 젊은이들의 국제대회 참가비를 지원하거나 후원금을 보냈다. EoC 관련 학위논문을 쓰거나 소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는 청년들을 위해 지원금을 수여하는 기금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기부를 통해 직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관행처럼 이뤄지는 비리에 대해서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의 영업사원이 (주)오렌지의 매출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자신의 비리를 묵인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를 거절하면서 스스로 회사에 고백하도록 설득하고 그 회사 임원에게 선처를 부탁하였다. 그러자 그 영업사원이 오히려 자신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매출을 달성하지 못하여 거래를 중단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다면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고, 실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거래처 직원만이 아니라 (주)오렌지의 직원 중에도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1년 동안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비리도 제가 직원들하고 개인 면담을 하다가 발견한 거예요. 굉장히 심각한 비리였는데 직원들 면담을 하고 자료를 다 찾고 준비해서 그 사람이 퇴사를 하도록 조치했어요. 사장님은 그냥 거기서 끝내고 싶어 하셨어요. '그냥 내가 손해보고 말지...' 이런 입장이었는데 제가 사장님한테 '이 건에 대해서는 사법처리를 해야 된다'라고 말했어요. 금액이 크다는 뜻이 아니라 죄질이 매우 나빴어요. 제가 그때 했던 말이 이 회사가 사장님 것이지만 또한 사장님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했어요. 세 회사 중 제가 나가지 않는 회사에서 몇 번이나 비리를 처벌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에 세 회사 직원들 사이에 그래도 별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고, 지금 남아있는 직원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만들 가능성도 우리가 주는 것이라고 했어요. 직원들이 연루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시키는대로 왜곡된 자료를 작성하곤 했는데, 다행히 직원들이 실제 백업자료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본인들이 어디까지 연루돼 있었는지 다 얘기를 해라, 그냥 덮지는 않는다. 여러분이 협조를 안 해주면 내가 알아내는데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파악해야 되겠다. 뭐가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수술을 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인데 여기에서 대충 덮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면 결국은 그게 곪아서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된다. 대신 지금 여기서 여러분이 협조를 잘 해주면 말하는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우리데게 다 털어놓고 자료를 찾아서 파악한 다음에 다 끝내고 함께 새출발을 하자'라고 얘기를 했을 때 직원들이 거기에 협조해주었어요."


"회사에 어려움이 많고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들이 한꺼번에 닥칠 때는 EoC 정신을 나침반으로 삼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자신감과 용기를 잃어버리는 순간에 매번 드는 생각은, 우리 회사가 EoC 기업으로서 큰 결실을 이루는 모델은 될 수 없을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오게 될 다른 기업들을 위해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출처: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이탈리아 시민경제 사상과 한국 친교경제 EoC 기업 사례 연구> 사회학과 강영선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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