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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모두를 위한 경제

염지현 기자

2026년 6월 30일

EoC 35주년, ‘재생의 길’을 걷다 아르헨티나서 열린 국제 행사 다녀온 18인 현장 보고 [하] 사회학·신학·언론·협동조합 전문가들의 성찰

※편집자주 : 이윤을 얻기 위해 애쓰지만 그 열매를 기업의 성장과 어려운 이웃, 그리고 나눔의 문화를 위해 함께 나누는 경제 활동인 ‘모두를 위한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가 올해로 출범 35주년을 맞았다.



그 35년을 기념하는 국제 행사가 지난 5월 25일부터 30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재생의 길(A Path of Regeneration)’을 주제로 열렸다. 전 세계 기업인과 활동가들이 모인 이 자리에 한국에서도 18명이 함께했다.



소셜임팩트뉴스는 지난 주말에 열린 ‘EoC 성과공유회’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 정리한다. [상]편에서는 아르헨티나 세 현장의 생생한 체험 보고와 한국 EoC의 해외 연대 활동을, [하]편에서는 사회학·신학·언론·협동조합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사이트와 새롭게 다듬은 35주년 비전 선포를 다룬다.


[상] : 상처의 한가운데서 다시 태어나는 경제(☞관련 기사 : 상처의 한가운데서 다시 태어나는 경제)

[하] : 사회학·신학·언론·협동조합 전문가들의 성찰(현재 글)


지난 27일, 서울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브릭스홀에서 EoC 35주년 기념 국제 행사를 다녀온 이들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EoC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보고회가 아니라,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어떤 사회를 꿈꾸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떠올려 보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아르헨티나에 함께한 사람도, 이 자리에서 EoC를 처음 만난 사람도 모두 ‘한 사람의 EoC’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였다.


아르헨티나 세 현장의 생생한 체험 보고와 미얀마·칠레로 이어지는 해외 연대 활동으로 1부를 채웠다. 2부는 사회학·신학·언론·협동조합에 속한 전문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EoC를 들여다 본 소회를 정리해 무대에 올라, ‘재생의 길’이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풀어놓았다. 


‘EoC 성과��공유회’에는 EoC 활동에 관심있는 1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염지현
‘EoC 성과공유회’에는 EoC 활동에 관심있는 1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염지현

사회학자의 시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가”


첫 번째 발표는 성공회대학교 EoC연구소 위원이자 사회학자인 이가람 박사가 맡았다. 그는 한국에서 ‘모두를 위한 경제’ 또는 ‘공유의 경제’로 번역되는 EoC의 핵심 개념인 ‘코무니온(communion)’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선 단어임을 짚었다. 이어 그 의미를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과 연결해 설명했다.


성공회대학교 EoC연구소 위원이자 사회학자인 이가람 박사는 “나의 이익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만큼이나 타인을 살피는 사회적 관계를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정리했다. /사진=홍미애
성공회대학교 EoC연구소 위원이자 사회학자인 이가람 박사는 “나의 이익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만큼이나 타인을 살피는 사회적 관계를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정리했다. /사진=홍미애

그는 파라나 볼카데로에서 마주한 한 장면을 오래 기억에 담았다고 했다. 강을 끼고 있는 도시답게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민물고기 요리를 함께 나눠 먹었는데, 그 자리가 계산이나 격식 없이 즐겁고 따뜻했다는 것이다. 이가람 박사는 “모든 것이 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감각적으로 확 다가왔고, 동시에 그들이 먹는 방식이 내가 살아온 방식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도 함께 느꼈다”며, “EoC가 개념이 아니라 삶을 통해 직관적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EoC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보통 “계산 없이 먼저 주는 것”이라고 답한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기업도 사회공헌·자선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도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발견한 확실한 차이는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고 강조했다. 내가 선택한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택한다는 점이다.


이가람 박사는 사랑을 에로스·필리아·아가페 세 가지로 구분하며, “오늘의 경제는 자기애에 가까운 에로스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미리 옷을 갖춰 입고 정성껏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모습에서 그는 필리아와 아가페를 보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장면에서 핵심은 “나의 이익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만큼이나 타인을 살피는 사회적 관계를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정리했다.


결국 좋은 이야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것이 내 일상의 선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민하는 데서 ‘함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신학자와 언론인의 시선, “EoC는 시노드 교회의 사회적 표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이자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에서 기자로 활동 중인 경동현 박사는 EoC가 “시스템이나 모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를 동등한 주체로 대하고 상처 입을 위험을 무릅쓰면서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사진=홍미애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이자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에서 기자로 활동 중인 경동현 박사는 EoC가 “시스템이나 모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를 동등한 주체로 대하고 상처 입을 위험을 무릅쓰면서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사진=홍미애

두 번째 발표는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이자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에서 기자로 활동 중인 경동현 박사가 맡았다. 그는 지난해 말 35주년 행사 취재 제안을 받고, 사전 워크숍과 현지 취재를 거쳐 모두 네 편의 기사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는 그중 칼럼 형식의 마지막 기사 ‘모두를 위한 경제 EoC는 시노드(synodal)교회의 사회적 표현(누르면 연결)'을 정리해 풀어낸 것이었다.


경동현 박사는 솔직한 고백으로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EoC를 ‘35년간 이어진 대안 경제 운동, 즉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를 대체할 정교한 모델이나 인증 매뉴얼 같은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볼카데로 쓰레기 매립지를 체험하고, 전 세계에서 모인 약 380명의 활동가들과 함께한 본행사를 거치며 그 기대는 다른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그는 폐막식에서 아눅 그레뱅이 남긴 말 중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지, 그 의미와 맞닿아 있는 소명”이 자신의 깨달음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EoC가 “시스템이나 모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를 동등한 주체로 대하고 상처 입을 위험을 무릅쓰면서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깨달음이 세계 가톨릭교회와 한국 교회가 마주한 ‘시노드(synodal·함께 걷는) 교회’ 비전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의 변방으로 나아가는 교회상과 EoC의 실천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경동현 박사는 파라나에서 만난 건축자재 기업 디마코 대표 헤르만의 리더십을 그 구체적 사례로 들었다. 헤르만은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가장 가난한 볼카데로 마을의 의견을 물었고, 일방적으로 베푸는 대신 주민들이 스스로 화장실을 지을 수 있도록 자율성을 존중했다.


발표에 함께 띄운 사진 한 장(디마코가 지원한 붉은 벽돌 화장실이 있는 장면)은 주민과 기업이 상생하며 함께 걷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헤르만이 회사 인근에 땅을 사 직원들에게 원가로 주택을 제공하고 무이자 대출로 주거를 지원했으며, 그렇게 무상성을 체험한 직원들이 다시 볼카데로 마을로 찾아가 자재 지원과 교육에 나선 ‘선순환’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그는 EoC가 몇몇 대단한 기업만의 영웅담이 아니라며, “이 철학이 문서나 회의실에 갇혀 박제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일상적 소비와 치열한 경제활동 속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이 운동을 어떻게 확장해 교회 개혁과 시노드 교회를 이루는 데 보탤 수 있을지가, 자신이 발견한 길이라고 발표를 맺었다.



생태학자・협동조합 운영자의 시선,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세 번째 발표자는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전 KBS대전방송총국 보도국장) 방석준 교육팀장이 맡았다. 그는 34년간 방송기자로 사회의 목격자이자 고발자, 메신저로 살아왔지만 “머리와 입으로는 옳은 말을 하면서 정작 내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한 이중적 삶”을 자주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은퇴를 앞두고 “이제는 실천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어 놓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고, 그 길에서 협동조합을 만났다.


그는 EoC 국제대회에서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단테의 '신곡' 지옥문에 새겨진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이는 희망을 버려라"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지옥은 희망이 없어서 지옥"이라고 운을 뗀 그는,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수백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선의의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었다고 말했다.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전 KBS대전방송총국 보도국장) 방석준 교육팀장은 “이번 국제대회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라며 발표를 맺었다. /사진=홍미애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전 KBS대전방송총국 보도국장) 방석준 교육팀장은 “이번 국제대회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라며 발표를 맺었다. /사진=홍미애

방석준 팀장은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을 소개했다. ‘불휘’는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뿌리’를 뜻하는 옛말로, 조합원들이 나무뿌리처럼 서로 연결돼 에너지 전환의 나무를 지탱하자는 뜻을 담았다. 2019년 대전에서 설립된 이 조합은 최근 3000번째 조합원이 가입했고, 출자금 약 46억 원으로 40개의 발전소를 설치해 약 3M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이 규모가 연간 약 1850톤의 탄소를 감축하는 효과로, 30년생 소나무 43만 그루(약 1427ha)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두를 위한 경제’의 시선에서 조합의 ‘모든 이’를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들로 규정했다. 지난해 영남 대형 산불로 숨진 이들 중 혼자 힘으로 대피할 수 없었던 어르신과 장애인들, 가라앉는 섬나라 사람들, 기후 난민, 폭염에 쓰러지는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미래 세대와 여섯 번째 대멸종에 희생되는 뭇 생명까지를 피해자로 아울렀다.


현지 체험으로 볼카데로를 택한 그는 그곳에서 “모든 상처는 스스로 치유할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EoC의 메시지를 확인했다고 했다. 디마코가 규격화된 화장실을 지어주는 대신 조적 기술을 가르치고 자재를 대 주민 스스로 짓게 한 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게 한 일”이자 “시혜자와 수혜자의 일방통행이 아닌 친구이자 동행자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조합이 이미 몽골의 한 쓰레기 매립지 마을 청소년 공간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전하며, “물질적으로 선진국에 사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 가해자이며, 기후위기에 가장 적게 책임 있는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본다”고 짚었다.


방석준 팀장은 “이번 국제대회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라며 발표를 맺었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도 누군가의 사랑 덕분이고, 그 감사를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기 위해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진정한 친교”라는 것이다. 그는 동화 ‘어린 왕자’ 속 여우의 말을 빌려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본질적인 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소셜 섹터 관계자의 시선,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


마지막으로 소셜임팩트뉴스 염지현 편집장은 자신이 어떻게 이 자리에, 또 아르헨티나까지 가게 됐는지를 풀어놓았다. 수학을 전공해 수학적 통찰을 콘텐츠로 전해온 그는, 2023년부터 EoC를 일을 하다 알게 됐지만 “정작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성심당 정도 규모의 대단한 기업가들이나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캠페인일 것”이라 여겼고, EoC 모델이 책 속 구조에 갇혀 있다는 선입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을 경험하고 현실로 돌아오고 나니 EoC는 “나 자신의 EoC이며, 이는 곧 삶의 방식이 되어 있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그것을 ‘삶의 방식’이라 고백하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작은 존재인 “나도 내 자리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면 되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고, EoC를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삼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임선 이사가 현장 취재 기회를 권하며 전화를 걸어왔던 일을 떠올리며, “제일 잘하는 일인 잘 듣고, 잘 정리하고, 잘 써서 기록하는 일로 EoC에 보탬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현장에서 여덟 편의 기사를 실시간으로 써 내려갔고, 그 기록은 함께 간 그룹의 메신저 채널을 통해 빠르게 퍼져 좋은 반응과 피드백을 얻었음을 공유했다.


그가 직접 다녀 온 끼아라 루빅 학교에서 그는 “하나의 아주 작은 조직이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움직임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경험했다”고 말했다. 현장 워크숍을 마치고 전 세계 각국의 EoC 실천 사례를 공유하는 컨퍼런스 자리에서는 불특정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리를 아무 댓가 없이 더불어 아무렇지 않게 내어주는 사람들 의 모습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돌아와 보니 자신이 활동하는 성수동 소셜섹터에도 작은 형태로, 영세한 조직으로 운영되는 수많은 단체가 있었다며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커뮤니티로 연결하는 일을 자신의 EoC 실천으로 삼겠다고 했다.


염지현 편집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사랑하며 찍는 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며, ‘환대가 환대를 낳아’ 사회를 덮는 거대한 연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홍미애
염지현 편집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사랑하며 찍는 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며, ‘환대가 환대를 낳아’ 사회를 덮는 거대한 연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홍미애

염지현 편집장은 이 통찰을 ‘점·선·면’에 비유하며 메시지를 전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사랑하며 찍는 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며, ‘환대가 환대를 낳아’ 사회를 덮는 거대한 연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문제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지금, 나는 내 자리에서 작은 점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하겠다”며, 지역과 경계를 넘어 직접 찾아가 듣고 나누는 미디어, 그리고 소셜 섹터 내 활동가 당사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각자의 다짐으로 스스로 빈칸을 채워 본 시간


전문가들의 발표가 끝난 뒤, 사회자는 참석자들에게 워크시트를 펼치게 했다. ‘내가 꿈꾸는 사회’와 ‘내가 바로 실천할 수 있는 EoC’, 두 질문을 두고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짧은 침묵 속에서 참석자들은 하루 동안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내렸다.


작성을 마친 뒤 몇몇 참석자가 자신의 다짐을 나눴다. 한 참가자는 EoC 3040 책 모임을 계기로 이 자리에 오게 됐다며, “내가 무엇을 함으로써, 또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존재에게 큰 영향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내 말과 행동에 책임과 자부심을 가져야겠다고 느꼈다”며, 무상성의 세계를 자신의 일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 35년의 회고, “끼아라 루빅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행사의 마지막 비전 선포에 앞서, 성심당 브랜딩을 총괄하며 EoC 코리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미진 이사가 자신의 긴 인연을 돌아봤다. 이번 아르헨티나 행사에 아들·딸과 함께 다녀온 그는, 1990년대 중반 처음 EoC를 알게 됐을 때를 떠올렸다. 끼아라 루빅이 제안한 새로운 경제 대안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우리 사업체를 내어놓으라는 건가’하는 경계심도 함께 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EoC 코리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미진 이사는 최석균 EoC 코리아 운영위원과 함께 EoC 35주년 비전을 공유하고 비전 선포까지 발표했다.  /사진=홍미애
EoC 코리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미진 이사는 최석균 EoC 코리아 운영위원과 함께 EoC 35주년 비전을 공유하고 비전 선포까지 발표했다.  /사진=홍미애

그 망설임이 결심으로 바뀐 계기는 1999년, 한 국제 학교(세미나) 체험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돌아오자마자 EoC를 제안한 창시자 끼아라 루빅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성심당이 한국의 EoC 대표 기업이 되겠다”는, 당시로선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는 마음을 담은 다짐이었다. 김 이사는 그 오랜 인연이 지금도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경제’를 잇는 네 가지 정체성


행사의 대미는 35주년을 맞아 새롭게 다듬은 EoC의 비전 선포였다. 발표를 맡은 최석균 위원은 EoC가 더 이상 ‘기업 안의 것’에 머물지 않으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임을 강조했다.


그는 먼저 ‘소명(vocation)’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명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며,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발견됩니다. 각자의 소명은 언제나 고유하며, EoC는 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다양성은 EoC의 아름다움일 뿐 아니라 EoC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기업인만으로도, 연구자만으로도, 활동가만으로도 EoC를 만들 수는 없으며, 모든 소명이 통합된 목표를 위해 함께 행동할 때 비로소 빛날 수 있습니다.”


최 위원은 EoC인을 하나로 잇는 네 가지 정체성을 선포했다.


1. 나눔(증여)의 문화를 살아가고 확산한다.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재능과 시간, 나아가 영적인 가치까지 함께 나누는 문화다.


2. 선물로서 서로 주고받는, 호혜성이 살아있는 관계를 지향한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주고받는 상호성을 통해 형제적 공동체를 실현한다.


3. 취약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인정한다. 가난한 이들은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EoC 안에서 주체로서 역할을 하는 주요 멤버다.


4. 더 공정한 사회와 지구를 살리는 경제를 위해 함께 행동한다. 점점 양극화되는 세계 속에서 친교와 나눔의 경제를 확산하고, 기후위기 앞에서 지구와 생태 환경을 되살리는 일에 연대한다.


그는 ‘EoC는 시대를 앞서간 통찰’이라며,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해 보여도, 경제가 진정으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먼저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무가 아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여야 창의적인 재생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 비전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했다.


“EoC는 우리의 재능이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것임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르헨티나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대전의 한 빵집과 협동조합으로, 성수동의 작은 소셜섹터에서 다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으로. EoC 35주년 성과공유회는 ‘재생의 길’이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내리는 작은 결심들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발표자들이 저마다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결국 한 문장으로 모인 메시지는 분명했다.


경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변화는 ‘함께’에서 시작된다.


출처 :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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