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29일
EoC 35주년, ‘재생의 길’을 걷다 아르헨티나서 열린 국제 행사 다녀온 18인 현장 보고 [상] 아르헨티나 현장 보고와 EoC 코리아가 실천하는 연대
※편집자주 : 이윤을 얻기 위해 애쓰지만 그 열매를 기업의 성장과 어려운 이웃, 그리고 나눔의 문화를 위해 함께 나누는 경제 활동인 ‘모두를 위한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가 올해로 출범 35주년을 맞았다.
그 35년을 기념하는 국제 행사가 지난 5월 25일부터 30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재생의 길(A Path of Regeneration)’을 주제로 열렸다. 전 세계 기업인과 활동가들이 모인 이 자리에 한국에서도 18명이 함께했다.소셜임팩트뉴스는 지난 주말에 열린 ‘EoC 성과공유회’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 정리한다.
[상]편에서는 아르헨티나 세 현장의 생생한 체험 보고와 한국 EoC의 해외 연대 활동을, [하]편에서는 사회학·신학·언론·협동조합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사이트와 새롭게 다듬은 35주년 비전 선포를 다룬다.
[상] : 상처의 한가운데서 다시 태어나는 경제 (현재 글)
[하] : EoC는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실천한다
지난 27일, 서울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브릭스홀에서 EoC 35주년 기념 국제 행사를 다녀온 이들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EoC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보고회가 아니라,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어떤 사회를 꿈꾸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떠올려 보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아르헨티나에 함께한 사람도, 이 자리에서 EoC를 처음 만난 사람도 모두 ‘한 사람의 EoC’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였다.
“재생은 오직 상처의 중심에서 태어난다”
이번 EoC 35주년 국제 행사는 한 장소에 모이는 기념식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19개 지역으로 흩어져 각기 다른 현지 공동체를 직접 찾아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사흘 밤낮을 보냈다.
성과공유회 행사는 EoC 국제위원으로 활동 중인 성심당 임선 이사가 문을 열었다. 임 이사는 “유럽과 남미, 아시아 등 서로 다른 현실과 시각을 가진 국제위원들이 모여 ‘이 시대에 EoC가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한 끝에 ‘재생의 길’이라는 주제를 도출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전한 이번 포럼의 핵심 화두는 국제 EoC 공동 책임자 이사야스 헤르난도의 말이었다.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기면 그것을 치유하는 힘은 상처 안의 세포들에서 시작됩니다. 사회적·문화적·정서적 상처도 외부의 자본이나 제도만으로는 온전히 치유될 수 없습니다. 재생은 언제나 상처의 중심에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현지 체험을 통해 ‘오늘날 진정으로 소외된 자는 누구인가’를 다시 묻게 됐다고 말했다.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문화적·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소외의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참가자들은 일방적으로 돕는 사람도, 도움만 받는 사람도 아니었다. 서로 신뢰를 쌓고 각자 가진 것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상호성의 움직임’ 속에서, 임 이사는 “재생이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함께 새로워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참가자들이 찾은 현장은 세 곳이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끼아라 루빅 학교 △포콜라레 소도시 마리아폴리스 리아 △쓰레기 매립지 마을 파라나 볼카데로다.
끼아라 루빅 학교, “가난한 사람과 함께 걷다”
위기에서 시작된 학교 (발표: 최민지)
학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호세 카를로스 파스에 자리한다. 교육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마약 등 위험 환경에 노출돼 ‘교육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지역이다. 학교는 ‘지역의 실제적 필요’ 때문에 운영을 시작했다. 2019년 지역 유치원을 운영하던 수도회가 철수하면서 약 90명의 아 이들이 당장 갈 곳을 잃자, 차리스 재단을 중심으로 기업가와 교육 관계자들이 힘을 모아 운영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들은 새 건물을 짓는 대신, 포콜라레 운동이 오랫동안 피정과 묵상 공간으로 써온 ‘마리아폴리 센터’를 학교로 개조했다.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한 공간이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아이들을 위한 배움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에 발맞춰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팬데믹을 거치며 교육 연속성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2022년 초등 과정, 2025년 중등 과정을 개설해 현재 유치원부터 중등까지 운영하는 통합 교육기관이 됐다. 초기 80여 명이던 학생은 약 350명 규모로 늘었다.
끼아라 루빅 학교 현장에 다녀온 EoC 기업 LSC시스템즈 최민지 대리는 “정부나 관련 조직의 일방 적인 계획이 아니라 지역의 필요에 응답한 ‘아래로부터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끼아라 루빅 학교의 운영 철학은 EoC 그 자체다. 모든 사람을 경쟁 상대가 아닌 관계와 형제애의 주체로 바라보며, ‘가난한 사람과 함께 걷는 방식’을 택했다. 교직원 인건비 일부는 정부 지원으로, 나머지 운영비는 학부모 수업료와 기업·지역사회·후원자의 기부로 충당한 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교육비는 ‘연대 기금’으로 지원해, 한 아이의 교육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는 현재 350명 규모를 700명까지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규모의 경제로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고, 같은 가치를 실천하는 학교들과 세계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국적·문화·종교를 넘어선 ‘하나 됨의 문화’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진정한 ‘함께’를 배우다 (발표: 손은진)
부산역 앞 게스트하우스 ‘단테하우스’를 운영하는 손은진 대표는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끼아라 루빅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순수한 환대가 한국에서 온 일행을 맞았다. 머무는 사흘 동안 학교가 세워진 과정과 그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마다 선생님과 재단 이사, 직원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고, 손 대표도 여러 번 함께 울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희생의 마음으로 깊이 연결된 공동체임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 지역은 가난과 마약 문제에 깊이 노출돼 있다. 손 대표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까지 함께 돌보며 관계를 맺고 있었다”며, 교도소에 수감된 상황에서도 옥중 노동으로 자녀 학비를 마련한 한 아버지의 헌신을 학교가 품어준 사례를 소개했다. 아이 한 명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가정을 방문하고 부모와 관계를 맺어가는 그 길의 고됨을, 그는 잘 알기에 더 깊이 존경했다고 했다.

손 대표는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찾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함께’는 누군가의 재능으로, 누군가의 경제적 도움으로, 누군가의 시간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와 토요일까지 반납하며 눈을 맞춰 보충수업을 하는 교사들의 헌신은 ‘의무감을 넘어선 깊은 사랑’이었다.
오랫동안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하며 몸과 영혼이 지친 채로 떠났던 그는 이번 여정 에서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도, 혼자 다 해낼 수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단순한 서비스 공간을 넘어 ‘서로의 삶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며, “작은 친교의 경제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으로 발표를 맺었다.
소도시 리아, 일상·공동체·경제가 하나로 이어진 곳
함께 사는 작은 도시 (발표: 클라우디아)
마리아폴리스 리아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약 3시간 떨어진 소도시다. 이곳에는 여러 세대·종교·문화의 사람들이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며 84ha(=0.84Km2, 여의도의 약 1/10 크기)부지에 여러 나라에서 온 약 2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본래 농사와 목축이 이뤄지던 큰 농장(에스탄시아)이었다. 1920년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사용하며 수도원과 성당을 지었고, 1968년 포콜라레 운동이 이 땅을 받아 마리아폴리스를 일궜다.
주요 활동은 ▲약 300명을 수용하는 게스트하우스(세미나·캠프·회의·휴식) ▲커피와 곁들이는 쿠키·과자, 잼, 둘세 데 레체, 아르헨티나 전통 과자 알파호르를 만드는 ‘파스티치노 공장’ ▲11개월간 일·공부·문화활동을 병행하는 청년 체험 프로그램 ▲나무 공예품과 수제 아이스크림 생산 등이다. 일상과 공동체, 신앙과 경제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돼 있는 점이 이 도시의 특징이다.

페루 출신으로 페루 스페셜티 커피 수입·유통 사업을 하는 클라우디아 대표가 한국어로 마리아폴리스 리아를 소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대의 열정을 다시 소환하다 (발표: 임대혁)
성심당 임대혁 전무는 포콜라레 소도시 리아를 다녀온 소회를 전했 다. 20살 때 이탈리아의 포콜라레 소도시 로피아노에서 1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어, 리아에서 그때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했다.
임 전무는 젊은이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도우며 “이런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면 먹는 사람에게도 행복이 전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현장에서 빵을 굽는 성심당 직원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빈곤층에게 주택을 지어주는 ‘카사스 프로젝트’였다. 단순 후원이 아니라 수혜자가 하루 4시간씩 직접 건축에 참여해 “내가 지었다”는 자존감과 동등한 존엄성을 갖게 하는 방식이었다. 포콜라레와 교회, 정부가 연대해 지원하는 고등학교 방문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여러 주체가 연대해 청소년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놀라운 것은 그 학교 학생들이 이미 성심당을 EoC 기업 사례로 배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임 전무는 “EoC 기업인으로서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2023년 포콜라레 책임자 마가렛 카람과 헤수스가 성심당을 방문했을 때 “성심당은 마치 하나의 소도시 같다”고 말한 의미를, 이번 방문으로 다시 새겼다는 것이다. 그는 “소도시 방문이 20대의 열정을 다시 소환했고, 앞으로 10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며 “성심당 안에서 직원들과 더 단단히 사랑하는 회사를 건설하고 싶다”고 밝혔다.
파라나 볼카데로, ‘지원’보다 ‘동행’이 먼저
쓰레기 더미 위의 마을, 사람의 가능성 (발표: 임지혜)
정부 세종청사 보건복지부에 근무하며 환경·가난·복지 정책에 관심을 둔 임지혜 씨가 현장의 구조를 짚었다.
‘볼카데로’는 스페인어로 ‘쓰레기를 쏟아버리는 곳’이라는 뜻이자, 파라나 외곽 쓰레기 매립지의 이름이다. 이 쓰레기 더미에서 약 300가구가 생활한다. 트럭이 쓰레기를 쏟으면 주민들은 달려가 플라스틱과 금속을 주워 팔아 생계를 잇는데, 더 먼저·더 많이 줍기 위해 아이들까지 함께 달린다. 아동 노동·마약·범죄·환경오염이 얽힌 복합 현장이다. 2022년에는 8살 소년 치차가 쓰레기 운반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이곳에서 EoC 기업인 건축자재 유통회사 디마코를 중심으로 여러 기업·기관이 협력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었다. 디마코 대표 헤르만은 “신뢰가 생길 때까지 함부로 들여다보거나 사진 찍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탁한 물이 곳곳에 흘렀다. 지혜 씨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된다는 사실이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일행은 주민들이 직접 화장실을 짓는 가정을 방문했다. 디마코는 10년간 건축자재를 지원해왔지만, 핵심은 주민이 스스로 설계하고 직접 벽돌을 쌓아 완성한다는 점이었다. 투박하게 지어진 화장실에서도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주민들의 표정에 묻어났다. 헤르만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료 급식소에서 불에 구운 초리조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이름과 가족,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자 처음의 긴장은 사라졌고, 어느새 오래된 이웃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마을 이장은 “주민들이 쓰레기 처리와 자원 재활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만큼, 매립지가 재개발되더라도 그 역할을 인정하고 논의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째 볼카데로에서 활동하는 젊은 활동가 아나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곳에 태어나 다른 삶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립을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면 됩니다.”
지혜 씨는 “지원보다 동행이 먼저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전했다.
셋째 날 방문한 페트로펙 재단은 18년째 관계를 이어오며 벽돌공·전기기술자 양성 과정을 운영, 주민들이 국가 공인 자격증을 따도록 돕고 있었다. 교육받은 주민은 다시 다른 주민의 집 짓기를 가르쳤다. 지혜 씨는 “기업을 만날 때마다 회사 소개보다 직원들이 자신의 삶과 일하게 된 과정, 함께하는 기쁨을 먼저 이야기하는 문화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오라시오 대표는 “일은 하면서 배우고 습득할 수 있기에 채용 시 인성을 가장 먼저 본다”며 “스펙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가장 일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고 했다. 지혜 씨는 “그것이야말로 EoC가 추구하는 기업의 모습”이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한 장의 사진, 그리고 바뀐 시선 (발표: 홍미애)
같은 파라나를 다녀온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 홍미애 씨는 일주일 여정 가운데 ‘한 장의 사진’에 집중했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그는 마을에 들어가기 전 촬영 허락을 받아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 어느 집 앞에 웅크려 앉은 한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걷다 보면 또 다른 대문 옆에 웅크려 서 있는 그 아이가 풍경처럼 자꾸 보였다고 했다. 그는 “그 아이는 없는 듯 있으면서도 자꾸만 자신을 봐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집이 바로 그 아이의 집이었다. 줄곧 숨어 있던 아이는 벽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런데 정작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가 아니라 마당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인형들, 개밥그릇 옆에 놓인 인형, 썩은 음식물과 하수구 냄새. 영화 ‘기생충’이 말하던 냄새가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왜 이렇게 방치돼 있을까, 엄마와 세 딸은 왜 청소를 하지 않을까.”
그 집은 그에게 볼카데로를 상징하는 ‘가장 비참한 공간’으로 기억됐다.
반전은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찾아왔다. 그는 현장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멈춰 서게 됐다. 사진 속 아이는 마당에 흩어져 있던 인형과 별반 다르지 않는 인형 하나를 꼭 안고 웃고 있었다. 그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아이가 든 인형은 마치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그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혹시 이 아이는, 이 아이의 가족들은 청소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청소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 질문은 오래 머물며 인형을 향하던 시선을 아이를 향한 시선으로 돌려놓았다. 쓰레기처럼 보였던 인형은 한 아이가 가장 소중히 품은 친구가 되었고, 더럽고 비참하게 보였던 집은 한 가족이 삶을 이어가는 터전으로 다시 보였다.
“돌아보면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제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의 씨앗은 본행사에서 들은 한마 디였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파라나 현지 체험(3박 4일) 이후 열린 본행사(1박 2일)에서 볼카데로 활동가와 주민이 직접 발표에 나섰는데, 활동가 크리스티나는 현장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볼카데로 주민들은 도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그 힘들고 냄새나는 현장에서 분리해, 도시의 젖줄인 파라나 강의 오염을 막아온 ‘환경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헌신에 빚을 졌으니 감사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미애 씨는 “그 전까지 나는 그들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로만 여겼다”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관점을 바꾼다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일인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언어로는 보편적 형제애와 상호성에 기반한 나눔을 이해한다고 여겼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볼카데로가 강렬하게 알려주었다”며 “사진 속 소녀와 인형을 통해 다시 확인한 관점의 차이가 이번 여정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재생의 여정’이 무너진 공간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어가는 여정이었음에 감사한다”며 “아직 소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는 힌트를 얻었고, 제 안의 재생의 여정은 오늘도 더 선명하게 계속되고 있다”고 발표를 맺었다.
“한국에서도 함께 할 수 있다”, EoC 코리아가 실천하는 연대
한국 EoC는 국경을 넘어선 연대 활동도 함께 펼치고 있다. EoC 코리아 박창호 운영위원은 UN이 인정한 세계 최빈국 미얀마에 지난해 연말 제1호 EoC 기업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EoC 코리아의 도움으로 출발한 이 기업은 내전으로 생긴 국내 난민을 돕는 한편, 직업 기술 워크숍 등으로 지역사회에 환원하며 ‘Her Craft’ 프로젝트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EoC 코리아가 3년째 이탈리아 소피아대학과 운영해 온 국제 과정(미얀마 청년 15명 수강)과 석사 과정 지원 등 오랜 노력의 결실로, 제1호 석사 논문도 나왔다. 미얀마 외에 노숙인 자활 꽃배달 사업, 국내 난민 가정 지원 등도 빈곤관측 프로젝트 사업의 차원에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어 칠레 산티아고 융가이 지역의 여성 노숙인 보호소 ‘핑크룸’ 후원 소식이 전해졌다. 활동가 파올라는 한국을 방문해, 보호 대상을 수혜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며 연대하는 활동을 소개하고 EoC 코리아 기업들의 후원에 감사를 전했다.
끝으로 국내에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로 EoC 월 정기모임, 3040 모임, 연구자·기업 모임 등이 안내됐다.
[하] 편 예고 2부 행사에서는 사회학·신학·언론·협동조합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EoC 35주년 행사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이야기했다. 참석자들이 워크시트에 적어 내려간 ‘나의 다짐’과 35주년을 맞아 새롭게 다듬은 EoC 비전 선포의 현장을 전한다.
출처 :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