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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연대: 볼카데로 프로젝트

경동현 기자

2026년 6월 5일

기획연재: '모두를 위한 경제 EoC' 35주년 ②남미 현장을 가다

볼카데로(Volcadero)는 아르헨티나 파라나(Paraná)시의 산마르틴(San Martín) 지역 인근, 시 외곽에 자리한 쓰레기 매립장이다. 하루 수백 톤 규모의 생활 폐기물이 반입되며, 일부는 재활용 선별 시설로 가지만 상당량이 그대로 야적되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하루 약 300~500톤의 쓰레기가 유입된다고 한다. 300여 가구가 재활용품을 수집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곳은 지난 2022년 8세 아동 치차가 쓰레기 운반 차량 사고로 사망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볼카데로는 ’환경 문제‘를 넘어 구조적 빈곤의 상징처럼 다뤄진다.

지난 5월 초,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아르헨티나 사법부와 주정부는 볼카데로 쓰레기장을 정비, 이전하는 문제를 추진 중인데, 이 지역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700여 주민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이전을 추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빈곤의 최전선에 건넨 연대의 손길, 디마코(DIMACO)


이 척박한 곳에 '모두를 위한 경제(EoC)'의 철학으로 다가간 이들이 있다. 건축 자재 유통 기업 디마코(DIMACO)의 헤르만 사장은 페트로팩 재단과 협력하여 볼카데로 주민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디마코에 관한 자세한 소개는 최근 발간된 <사랑과 나눔의 문화로 경계를 허무는 기업들>, 이유출판, 2026, 참조).

디마코는 학교의 화장실, 강당, 축구장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 자재 제공에 그치지 않고, 빈민촌 주민에게 집짓는 데 필요한 기술인 벽돌공 및 전기 기술자 양성 과정을 신설했다. 수료자들이 직접 집이나 가게를 지을 수 있도록 자재를 지원해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헤르만 사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회사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이곳에 다시 와야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며 가장 비참한 현장을 기업 경영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5월 26일 볼카데로 마을 현장체험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 제공 = 성심당)
5월 26일 볼카데로 마을 현장체험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 제공 = 성심당)


무상성이 낳은 기적, 회사와 마을에 피어난 '품앗이'


EoC에서 말하는 '무상성'은 단순히 대가 없이 물질을 베푸는 시혜적 자선이 아니다. 이는 계산을 뛰어넘어 타인을 동등한 형제로 인정하고 내어주는 태도로, 조직과 사회 내에 강력한 '주는 문화의 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

초창기, 회사가 외부 빈민을 돕는 모습을 본 디마코 직원들 사이에서는 "정작 우리 자신도 집이 없는데 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에 헤르만 사장은 일정한 수입이 없는 빈민을 돕는 일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도 직원들의 고충을 외면하지 않고, 인근의 부지를 원가로 분양하며 무이자 대출과 자재를 제공해 직원들이 내 집을 마련하도록 돕는 '무상성'을 실천했다.


현장참가자들에게 디마코가 볼카데로 주민과 연대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헤르만 사장과 직원들. ⓒ경동현 기자
현장참가자들에게 디마코가 볼카데로 주민과 연대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헤르만 사장과 직원들. ⓒ경동현 기자


무상성을 체험한 직원들은 또 다른 연대의 손길을 건네는 이들로 바뀌었다. 헤르만 사장은 직원들에게 기부나 동참을 강요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우리가 뭔가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까지 기다렸다. 자발성이야말로 무상성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의 도움으로 집을 지은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회사 트럭을 이용해 볼카데로 빈민촌 가옥 건축에 나섰고, 찢어진 시멘트 포대조차 버리지 않고 모아 빈민 지원 프로젝트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대의 기운은 볼카데로 마을 안에서도 번져나갔다. 디마코의 교육을 받고 기술을 익힌 주민들은 자기 집뿐만 아니라 이웃의 화장실 공사를 직접 도와주고 유지보수까지 해주기 시작했다. 좋은 쓰레기를 줍기 위해 폭력과 경쟁이 난무했던 쓰레기장에, 서로 땀을 흘리며 화장실을 지어주는 '품앗이' 문화가 활성화된 것이다. 디마코의 지원이 단순한 집 짓기를 넘어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한 셈이다.


디마코 사옥 앞에서 한국의 EoC 참가자들과 함께한 헤르만 사장. ⓒ경동현 기자
디마코 사옥 앞에서 한국의 EoC 참가자들과 함께한 헤르만 사장. ⓒ경동현 기자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발견한 현장체험


5월 26일, 볼카데로 현장을 방문한 한국의 EoC 35주년 행사 참가자들은 방문 후 이어진 현장체험 나눔에서 하나같이 '자율성의 존중'과 '관계 회복'이 연대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한국의 복지 정책은 주거지를 만들어 놓고 입주시키는 방식이지만, 디마코는 집짓는 자재인 벽돌 등 최소한의 자재만 지원하고 주민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색감과 방식으로 화장실을 만들게 하여 그들의 자율성을 지켜주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허물어진 판잣집 벽과 디마코의 벽돌로 지어진 새 화장실이 단단히 이어져 있는 모습은, 가난 속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를 잇는 '연결'의 상징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빈곤 지역에서 진정한 연대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 주느냐의 문제를 넘어, 그들이 소외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확성기가 되어주며 함께 '존재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마코가 지원한 벽돌과 주민의 노동력으로 지은 화장실이 기존 주택 벽에 이어져 있다. ⓒ경동현 기자
디마코가 지원한 벽돌과 주민의 노동력으로 지은 화장실이 기존 주택 벽에 이어져 있다. ⓒ경동현 기자


쓰레기 매립장에서 수집한 재활용품들이 마을 곳곳에 쌓여 있는 모습. ⓒ경동현 기자
쓰레기 매립장에서 수집한 재활용품들이 마을 곳곳에 쌓여 있는 모습. ⓒ경동현 기자

볼카데로의 기적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경제적 구원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상처 입을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의 곁에 벽돌을 쌓아 올리는 '얼굴과 얼굴이 만나는 연대'에 있지 않을까. 디마코와 볼카데로가 만들어낸 이 투박하지만 따뜻한 품앗이 속에서 우리는 '모두를 위한 경제'가 나아가야 할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확인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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